"한국야구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삼성 마무리 오승환이 27일 퉁이전을 마친 후 남긴 말이다. 호주 퍼스전에서는 단 1타자만을 상대했고 소프트뱅크전에서는 팀이 대패하며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오승환. 그가 작심을 하고 전매특허인 돌직구를 뿌려대자 타오위앤 구장은 냉장고 속처럼 얼어붙었다.
오승환은 27일 대만 타오위앤 국제구장에서 열린 대만 퉁이와의 아시아시리즈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팀이 6-3으로 앞서던 9회말 마무리로 등판, 세이브를 기록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삼성의 아시아시리즈 결승진출, 침묵을 깬 최형우의 투런포등 여러 이슈가 많았지만 단연 돋보인 것은 대만의 감독, 선수, 팬 모두의 넋을 빼놓은 오승환의 대포알 직구였다.
등장은 조용했다. 국내에서는 오승환이 등판하면 "오승환, 세이브 어스"라는 가사의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와 상대 선수들과 팬들을 주늑들게 만든다. 끝판대장이라는 별명답게 '오승환 등판=삼성 승리'라는 공식이 인지돼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만팬들은 이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우리가 대만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을 자세히 모르듯 대만도 오승환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퉁이 팬들은 마지막 공격 기회에 역전을 바라는 마음에 모두 일어나 열띤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선두타자가 이날 경기 6회 극적인 동점 투런포를 터뜨린 궈준요우였기 때문에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하지만 오승환이 궈준요우에게 공을 딱 1개 던지고 나자 경기장은 곧바로 침묵에 빠지고 말았다. 초구부터 150km의 돌직구. 일부 대만팬들이 자신도 모르게 내지르는 "우와"하는 탄성이 기자석까지 들려왔다. 전날 삼성이 소프트뱅크에 0대9로 완패한 후 다소 의기소침해 있던 한국 기자들이 오승환의 공 1개에 곧바로 어깨에 힘이 딱 들어갔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보통 대만 투수들의 직구구속은 빨라야 140km. 그러니 대만팬들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퉁이에 비수를 꽃는 투구임에도 불구하고 생전 볼 수 없었던 '다른 세상'을 만나자 탄성을 내뱉고 만 것이다.
오승환이 던진 152km의 직구에 궈준요우가 헛스윙 삼진을 당하자 경기 내내 열띤 응원을 보내던 팬들이 체념한 듯 일제히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팬들 뿐 아니었다. 퉁이의 선수들과 덕아웃도 당황한 눈치였다. 궈준요우에 이어 등장한 양송시앤은 하염없이 오승환이 던진 공을 바라보다 스탠딩 삼진으로 물러났다. 중계 카메라에 잡힌 퉁이 뤼원셩 감독은 양송시앤이 삼진을 당하자 모자를 벗고 머리를 긁적이며 체념한 듯 했고 경기를 지켜보던 선수들도 '어디서 저런 투수가 나왔어'라는 표정으로 얼어있을 뿐이었다. 마지막에 대타로 나와 151km 직구를 받아쳐 3루땅볼로 물러난 주위앤친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로 인상적인 투구였다.
오승환은 이날 던진 13개의 공 중 12개를 직구로 선택했다. 그 중 10개의 공이 150km를 넘었다. 평소 국내 프로무대에서는 140km 후반대의 평균구속을 유지했던걸 감안하면 오승환이 이날 경기에서 그 어느 때 보다 전력을 다해 피칭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기 후, 기자회견을 마치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오승환의 모습을 바라보는 대만 관계자와 팬들의 눈에는 '경이로움'이라는 단어가 아주 크게 쓰여 있었다.
타오위앤(대만)=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