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이 예전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을까.
김승현이 코트로 돌아온다. 김승현과 오리온스는 지난 22일 김승현이 제기한 소송을 취하하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이로써 지난해 7월부터 이어진 소송은 끝났다. 합의서에는 다음달 8일까지 김승현을 조건없이 이적시킨다는 내용이 적혔다. 트레이드 대상 구단을 정함에 있어 김승현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조항도 넣었다. 트레이드가 성사되지 않을 시에는 김승현이 웨이버 공시로 풀린다는 안전장치도 포함됐다.
KBL은 23일 오리온스로부터 서류를 받고, 24일 김승현의 임의탈퇴 처분을 해제했다. 이날 선수 등록까지 마쳤다. 그야말로 일사천리다. 한선교 KBL 총재가 적극적이었다. 그는 24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프로농구의 발전과 흥행, 팬들의 열망을 생각해서라도 김승현을 빨리 복귀시켜야 했다"며 "KBL과 프로농구, 소속팀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등 책임도 크다. 하지만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은 모두 내가 짊어지겠다"고 밝혔다.
한 총재가 이토록 호소한 데는 이유가 있다. 프로농구는 스타플레이어가 사라지면서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농구의 부흥을 위해서 화려함의 대명사인 김승현 같은 선수가 필요했다. 하지만 공백이 너무 길었다. 김승현이 마지막으로 코트에 선 날은 2010년 3월 6일이다. 무려 1년8개월여의 공백. 복귀 후 예전 기량을 보여줄 수 있을까.
여러 변수가 있지만 농구계의 여론을 종합해서 결론부터 말하면 재기가 낙관적이다.
▶선천적 재능은 없어지지 않는다.
김승현의 현재 기량은 베일에 싸여있다.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아무도 모른다. 긍정적 시선과 부정적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긍정적인 반응은 역시 그의 천재성에 주목한다. 코트 복귀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지속적인 러브콜을 보낸 삼성 김상준 감독은 "기본적인 기술은 어디 가지 않는다. 패싱 센스는 최고다. 몸상태가 관건이겠지만, 지금 당장 돌아와도 5분은 책임져줄 수 있다"고 했다.
김승현은 한국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2000년대를 보냈다. 득점력을 갖춘 빅맨만 있다면 팀 수준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선수다. 작은 키(1m78)에도 불구하고, 빠른 스피드로 최고 수준의 돌파력을 갖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패스능력이 좋다. 이를 바탕으로 4차례나 어시스트왕을 차지했다. 데뷔 시즌인 2001~2002시즌 때 마르커스 힉스와 호흡을 맞춰 팀을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으로 이끈 뒤 신인왕과 MVP를 석권했다.
▶경기 감각? "1~2주면 된다"
부정적인 시선은 역시 경기감각에서 나온다. KCC 허 재 감독은 김승현의 기량에 대해 "농구는 부딪치면서 해야한다. 혼자 연습해서는 안된다. 한 달만 쉬어도 경기 적응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라며 "김승현의 영입으로 당장 전력 상승 효과를 기대하면 안된다. 올해보다는 내년을 기대해야 하는 선수다"라고 말했다.
허리 상태도 걱정이다. 김승현은 2007년부터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 임의탈퇴 파문 전에도 허리 통증으로 인해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김승현의 천재성에 주목하며 금세 예전 기량으로 복귀할 거라 말하는 이들도 '허리 부상만 없다면'이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정작 본인은 문제 없다는 반응이다. 김승현은 24일 기자회견에서 "쉬는 동안 체중 관리를 꾸준히 했다. 살이 찌지 않기 위해서다. 등산도 많이 했다"며 "공을 많이 못 만진 건 걱정이다. 공을 만지고 코트를 밟아봐야 알 수 있겠지만, 1주일에서 2주일 정도면 충분히 경기를 뛸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승현은 이달 초 오리온스 복귀를 전제로 협상을 진행하면서 체력테스트를 받은 바 있다. 결과는 좋았다. 전성기의 70% 정도로 코트에 서는데 얼마 걸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리온스의 배려로 이적 전까지 고양실내체육관 내 연습장에서 운동을 하게 된 것도 호재다. 오리온스 선수단과 함께는 아니지만, 은퇴한 김병철(현 고양시 리틀농구단 감독)과 함께 몸을 만든다.
▶어느 유니폼을 입을까?
오리온스 심용섭 사장은 24일 기자회견에서 "현재 3개 구단이 관심을 보였다. 어떤 선수를 보내줄지 답이 오는대로 추일승 감독과 상의해 트레이드를 추진하겠다"며 "오래 끌지 않겠다. 합의서에 명시된 12월8일까지 기다리지도 않겠다. 카드만 맞으면 당장 이적시킨다"고 밝힌 바 있다.
김승현에 관심을 보인 3개 팀은 삼성 LG 전자랜드로 알려졌다. 삼성은 주전 포인트가드 이정석이 왼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시즌 초반부터 전력에서 이탈해 가장 절실하다. 하지만 트레이드 카드가 마땅치 않은 게 문제다. 삼성은 이시준 김동욱 등 주전급들에 대해 '트레이드 불가'를 선언했다.
LG와 전자랜드는 트레이드 성사 가능성이 높은 팀이다. LG는 김승현의 스승인 김 진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또한 김승현과 절친한 서장훈도 있다. LG는 현재 확실한 가드가 없어 하위권에 처져있다. 김승현으로 인한 전력 상승 효과를 즉시 볼 수 있다. 전자랜드는 신기성과 강 혁이라는 두 베테랑 가드가 있다. 다른 자원도 풍부해 트레이드 카드를 맞추기 좋은 상황. 오리온스 추일승 감독이 즉시전력을 원하고 있는 점도 호재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