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호에는 '최정예'라는 단어가 사라진 지 오래다.
세월이 흘러 감각도 무뎌졌다.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42)은 "분위기라도 좋아야지"라며 희미하게 웃을 뿐이다.
감독은 최적의 조건에서 그림을 그린다. 올림픽대표팀은 예외다. 베스트 11이 없다. 양지와 음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홍 감독은 오로지 경쟁으로 선수들을 판단한다.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하지 않아도 다음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안 된다. '후보라서 못 뛴다'고 생각하는 선수가 생기면 준비가 소홀해지고 팀 전력에 영향을 끼친다."
지극히 당연한 논리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있다. 홍명보호의 차출 대상은 '올림픽 해'인 내년 만 23세 이하가 되는 선수들이다.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베스트 11 중 절반이 넘는 자원이 해외파다. 기성용(22·셀틱) 구자철(22·볼프스부르크) 지동원(20·선덜랜드) 등은 유럽, 김보경(22·세레소 오사카) 김영권(21·오미야) 조영철(22·니가타) 김민우(21·사간 도스) 등은 일본 무대를 누비고 있다. 올림픽 예선의 경우 A매치와 달리 선수 소집 의무 규정이 없다.
유럽파 차출은 꿈도 안 꾼다. J-리거 호출을 위해서도 홍 감독과 일본 출신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코치가 읍소를 해야 한다. 쉽지는 않다. 9월 21일 오만과의 1차전(2대0 승)에서는 조영철 김민우 김보경 정우영(22·교토) 배천석(21·빗셀 고베) 한국영(21·쇼난 벨마레) 등 6명이 차출됐지만 이번에는 한국영 뿐이다.
A대표팀의 눈치도 봐야 한다. 일정은 겹치지 않지만 늘 상황이 미묘하다. 내년에도 걱정이다. 홍명보호는 2월 5일과 22일 각각 사우디아라비아, 오만과 원정 2연전(2012년 런던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4, 5차전)을 갖는다. 반면 A대표팀은 2월 29일 홈에서 쿠웨이트와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최종전을 치른다. 이겨야만 자력으로 최종예선에 오를 수 있는 운명의 일전이다. 5일 경기는 큰 문제가 없지만 22일 오만전에선 A대표팀 일원인 주장 홍정호(22·제주) 서정진(22·전북) 홍 철(21·성남) 윤빛가람(21) 등이 전력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
변수가 한 둘이 아니다. 홍 감독으로선 그 때, 그 때마다 상황에 맞게 최상의 모법답안을 도출해 내야 한다. 섣불리 베스트 11을 결정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주전, 비주전이 없다.
힘든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위안을 삼는 말이 있다. "우리 팀은 스토리가 있다." 홍명보호는 드라마다. 결말이 어떻게 될 지는 아직 모른다. 27일 오후 2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사우디아라비아전이 런던행의 반환점(3차전)이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역사와 기록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홍 감독의 출사표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