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 축구에도 격이 있다. 23일 준플레이오프에서 수원을 무너뜨린 울산은 지금까지 최고의 방패라 불렸다. 이제부턴 '뿔 난 방패'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수비 그 자체로 상대 공격의 맥을 끊고, 곧바로 분위기를 자신들쪽으로 끌어온다.
김호곤 울산 감독은 "수비축구라는 말은 내가 부임하기전부터 굳어진 이미지다. 나도 수비수 출신이지만 공격 축구가 좋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도 울산 축구를 지켜본 이들은 공격축구라고 하지 않았다. 데이터가 말해준다. 정규리그 30경기에서 29실점을 했다. 리그 1위인 전북(32실점)보다 짠물 수비를 했다.
이날 수원전에서 울산은 중앙 미드필더들이 1차적인 공격 차단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에스티벤과 이 호가 상대 공격을 묶어 뒀기에 왼쪽 측면 수비수 최재수는 마음껏 오버래핑을 시도했다. 이재성과 곽태휘는 중앙 수비수지만 제공권 뿐만 아니라 기동력도 과시했다. 공격 때는 부리나케 달려가 힘을 보태다가도 수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마지노선을 지켰다.
수원은 이날 전반 내내 거친 공격을 시도했지만 울산의 수비축구에 막혔다기 보다는 다이내믹한 공수 전환에 침묵했다. 울산 공격수들은 빠르게 측면과 중앙을 오갔다. 또 템포를 접목시킨 속공을 기분좋게 즐겼다.
반면 수비축구의 또 다른 축인 수원은 낭패를 봤다. 중앙 수비수 때문이었다. 장딴지가 좋지 않은 곽희주는 선발출전했지만 전반 30분에 최성환으로 교체됐다. 수원의 중앙 수비수 마토는 곽희주와 있을때 훨씬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인다. 최성환과 호흡을 맞출 때는 자신의 느린 스피드를 전혀 보상받지 못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윤성효 수원 감독은 지난 20일 부산과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곽희주가 다치자 최성환을 냈다가 중앙 미드필더 오장은을 오른쪽 사이드 수비수로 내려 스리백(수비시에는 5백라인)을 사용한 바 있다. 수원 서포터스로 부터 "공격하라 수원"이라는 치욕적인 콜을 들어야 했지만 윤 감독 또한 승리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선제골을 울산에 내줘 스리백으로 전환을 시도하지도 못했다.
이날 울산은 충분히 공격적이었다. 볼점유율만 많다고 해서 공격축구는 아니다. 울산은 공격시에는 전원이 골문을 향했다. 찬스를 잡으면 어떻게든 마무리까지 연결시키려 애를 썼다. 전반 21분 1-0으로 앞섰지만 이후에도 골문을 잠그려 하지 않고 수원과 치고 받았다. 경기종료 20분여를 남겨두고서야 공격형 미드필더 박승일을 빼고 수비수 강민수를 투입했다.
수원 마토에게 페널티킥을 내줄 때까지 울산은 표면적으론 수비축구를 했지만 공격수들의 움직임은 살아 있었다. 축구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의 소극적인 축구는 아니었다. 연장 접전에 이은피말리는 승부차기 승리. 꿈틀대는 울산 축구 역동성의 연장선상이었다. 수원=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