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이네~." 뮤지컬 '에비타'의 타이틀롤로 배우 정선아가 낙점됐다는 소식에 대다수의 관계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시점에서, 라틴여인의 열정과 끼, 에너지를 가장 잘 뿜어낼 수 있는 여배우로는 그녀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지나 연출의 주문이 재미있다. "너는 연기를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즐겁게 하면 돼."
아르헨티나의 국모로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에바 페론 에비타. 성녀와 악녀의 두 얼굴을 간직한 그녀를 뮤지컬 무대에 환생시킨 '에비타'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진정한 걸작으로 꼽힌다. 클래시컬한 음악의 다양한 변주, 진폭이 큰 드라마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뮤지컬 배우 10년 만에 이 역을 맡은 것은 큰 행운입니다. 성녀 못지않게 악녀기질과 열정, 팜므파탈적인 면모까지 다 보여주고 싶어요. 뜨겁게 살다 서른셋에 세상을 뜬 한 여인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습니다."
정선아는 국내 뮤지컬계에서 가장 핫(hot)한 여배우 중 한 명이다. 고교 3학년때인 지난 2002년 '렌트' 오디션에 '재고 뭐고 할 것 없이' 나섰다가 주인공 '미미' 역에 덜컥 캐스팅됐다. 딱히 배우수업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타고난 자질과 '무모한' 열정이 통했다. 첫 작품에서부터 주인공을 꿰찬 뒤 그녀의 배우인생은 탄탄대로를 달려왔다. '나인' '드림걸즈' '아이다' 등 대작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소화하며 커리어를 쌓아왔다. 가장 큰 장점은 타고난 목소리. 의사도 깜짝 놀랄만큼 '튼튼한' 성대를 타고 났다. 거기에 무대 위에 서면 뿜어져나오는 무한 에너지와 넘치는 끼는 객석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이런 그녀도 이번 '에비타'을 앞두고는 살짝 긴장하는 눈치다. 여배우라면 누구나 해보고 싶은 역할이지만 전체적으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 어깨가 무겁기 때문이다.
"포스터에 제 이름이 가장 먼저 있는거예요. 그걸 본 순간 '어떻게 하지?'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웃음)
완벽한 에비타로 변신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했다. 에비타의 전기를 두 번이나 읽었고, 인터넷에서 각종 자료를 검색하며 감정이입을 시도해왔다. "다른 작품의 경우에는 '이 사람이 이랬을 것'이라며 상상에 의존한 측면이 많았지만 이번엔 가까운 과거에 실존했던 인물이잖아요. 자료를 통해서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싶었어요."
정선아는 이 작품을 하나의 전환점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솔직히 자신감에 넘쳐 살았던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언제부턴가 '아, 이게 아니구나. 내가 연기 내공이 더 있었더라면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반성이 들기 시작했어요. 선배들이 있어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고, 많이 부족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굴곡의 삶을 산 에비타는 이러 그녀에게 도전을 유혹하는 봉우리다. '이 산만 넘는다면…'이라는 투지의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뮤지컬배우로 산다는 게 정말 행복합니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장르는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뮤지컬을 사랑하고 끝까지 지키고 싶어요."
사내처럼 솔직하고 화통한 스타일. 시원시원한 화법에 에두르는 게 없다. 그녀가 부를 '돈 크라이 포미 아르헨티나'가 벌써 기다려진다. '에비타'는 오는 12월9일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