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와 프로배구, 프로농구와 마찬가지로 K-리그도 재벌기업들의 자존심 경쟁이 펼쳐지는 경연장이다.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둔 기업구단을 빼놓고 국내 프로 스포츠를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런데 2011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챔피언십에서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과 현대, 두 재벌기업이 우승을 놓고 맞서는 구도다.
챔피언십 출전 6개 팀 중에서 현대가에서 운영하는 클럽은 정규리그 1위 전북 현대(현대자동차)와 6위 울산 현대(현대중공업), 5위 부산 아이파크(현대산업개발) 3개다. 한국축구 발전에 기여해 온 기업답게 현대에 뿌리를 둔 3개 팀 모두 6강에 올랐다.
현대자동차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차남 정몽구 회장이 오너이고,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는 정몽구 회장의 동생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이자 부산 아이파크 구단주인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인 고 정세영 회장 아들이다. 정몽규 회장은 정몽구 회장과 정몽준 대주주의 사촌동생이다.
수원 삼성은 삼성그룹의 주력사인 삼성전자로부터 운영자금을 받아 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대신해 최지성 대표이사 부회장이 수원 삼성 구단주를 맡고 있다.
현대가 클럽의 맏형 격인 울산 현대는 1984년, 수원 삼성은 1996년 K-리그에 참가했다. 울산 현대가 전통의 명문이라면, 짧은 기간에 집중 투자로 네차례 정규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린 수원 삼성은 신흥명문이라 할만하다.
현대 대 삼성, 양 기업의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는 삼성이 웃었다. 수원 삼성은 20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6강 플레이오프(PO)에서 1대0으로 이겼다.
그런데 현대를 넘자 다시 현대다. 천신만고 끝에 준 PO에 진출한 수원의 상대는 FC서울에 3대1 완승을 거둔 울산 현대다. 울산 현대는 FA컵 4강전에서 수원 삼성에 2-0으로 앞서다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2대3으로 역전패한 설욕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자매구단인 울산현대미포조선이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울산 현대는 내심 동반 우승까지 노리고 있다.
팀 컬러도 모기업의 사풍, 문화와 닮아 있다. 울산 현대는 옛 현대그룹의 이미지처럼 우직스럽고, 수원 삼성은 첨단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의 클럽답게 멤버 구성이 화려하다. 현대가 팀들은 대체로 투박하지만 끈끈하고, 수원 삼성은 영리한 느낌을 준다.
수원 삼성으로선 산 너머 산이다. 울산 현대를 넘어 PO에서 포항 스틸러스를 꺾는다고 하더라도 더 큰 벽이 기다리고 있다. K-리그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정규리그 1위 전북 현대가 기다리고 있다.
오랫동안 한국 경제를 이끌며 경쟁해온 현대와 삼성이 K-리그에서 벌이는 축구전쟁. 이번 챔피언십의 또다른 관전 포인트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