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는 올시즌 개막을 앞두고 국가대표를 거친 베테랑 선수를 무더기로 영입했다. 공격수 설기현(32)을 비롯해 수비수 곽태휘(30), 미드필더 송종국(32) 이 호(27)가 울산 유니폼을 입었다. 당연히 우승 후보라는 평가가 뒤따랐지만, 풍부한 경험을 얻은 대신 팀이 전반적으로 느려졌다는 말이 나왔다. 노련한 선수가 많아진 대신 기동력이 떨어져 움직임이 활발한 팀, 패기를 앞세운 젊은 팀을 만나면 고전했다.
울산은 개막전에서 대전 시티즌에 1대2로 충격패를 하더니, 2라운드에서 경남FC에 0대1로 무너졌다. 한수 아래로 봤던 시민구단에 개막 2연패를 당했다. 새로 합류한 선수가 많다보니 호흡이 잘 맞지 않았다. 울산은 정규리그 중후반까지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지난 여름 송종국이 톈진 테다(중국)로 떠났고, 빅클럽들이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리그컵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울산을 주목하는 축구인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좋은 자원을 보유하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심어졌다.
특히 설기현의 부진이 아쉬웠다. 지난 2월 포항 스틸러스에서 이적한 설기현은 외국인 골잡이를 대체할 만한 공격수로 주목됐다. 그러나 시즌 내내 아쉬웠다. 부산 아이파크와의 리그컵 결승전에서 1골-1도움을 기록하며 3대2 승리에 기여했지만, 정규리그에서는 3골에 그치는 등 기대했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공격진의 부진 속에 7골을 넣어 팀 내 득점 1위에 오른 중앙 수비수 곽태휘와 크게 대비됐다.
19일 열린 2011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6강 플레이오프(PO) FC서울전을 앞두고 울산의 승리를 점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축구인 절대 다수가 K-리그 최고 수준이라는 울산의 수비력보다, 서울의 화려한 공격력에 더 높은 점수를 줬다. 정규리그 6위로 6강 PO에 턱걸이로 진출한 울산은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시즌 상대 전적(1무1패)에서도 뒤졌다. 누가봐도 울산의 승리는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 베테랑 듀오 설기현과 곽태휘가 이런 예상을 보란듯이 깨트렸다. 이들의 경험과 노련미가 1경기로 모든 게 결정되는 단판 승부, 소위 큰 경기에서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서울전 3대1 승리는 30대 고참 설기현과 곽태휘가 쓴 반전 드라마였다. 골이 터진 모든 순간 설기현과 곽태휘가 있었다.
곽태휘는 전반 17분 골문 오른쪽에서 서울 골키퍼 김용대가 놓친 공을 오른발로 때려 선제골로 만들었다. 설기현은 전반 33분 정확한 크로스로 김신욱의 헤딩골을 이끌어냈고, 2-1로 쫓기던 후반 14분 고슬기의 쐐기골을 어시스트했다. 3만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진 원정경기였지만 위축되지 않고 차분하게 화려한 공격력의 서울을 무너트린 것이다.
'골 넣는 수비수'로 이름높은 곽태휘는 경기 전 "친정팀 서울전에서 골을 넣고 싶다"고 했는데, 그 바람을 이뤘다. 울산의 서울전 승리는 팀의 승리이면서 경험이 큰 힘을 발휘한 베테랑들의 승리였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