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변화는 독이다.
레바논전 참사는 지나친 포지션 이동에서 시작했다. 조광래 감독은 기성용이 결장하자 다른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중앙 수비수' 홍정호를 택했다. 포지션 파괴는 연쇄 이동을 가져왔다. 중앙 미드필더였던 이용래는 왼쪽 윙백으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이승기는 왼쪽 날개로 기용됐다. 결과는 참혹했다.
조 감독 용병술의 특징 중 하나라면 포지션 이동이다. 조 감독은 안양, 경남을 이끌던 시절 선수들의 과감한 포지션 이동으로 관심을 모았다. 대표팀 부임 후에도 이러한 실험은 계속됐다. 카타르아시안컵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구자철을 전진 배치해 득점왕까지 만든 것은 조 감독식 포지션 이동의 대표적 성공사례다. 그러나 최근들어 지나친 포지션 이동으로 팀 전체의 응집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조 감독은 가장 잘하는 11명의 선수를 정해놓고, 이들에 포지션을 맞춘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최근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독일의 사례를 보자. 요아킴 뢰브 감독의 경우 철저하게 소속팀에서의 포지션을 따른다. 뢰브 감독은 필립 람이 지난시즌 바이에른 뮌헨에서 오른쪽 윙백으로 뛰자, 대표팀에서도 오른쪽 윙백으로 고정시켰다. 올시즌 람의 보직이 왼쪽 윙백으로 바뀌자 뢰브 감독은 대표팀에서도 람의 위치를 왼쪽으로 옮겼다. 소속팀에서 뛰는 자리에서 뛰어야 대표팀에서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게 뢰브 감독의 지론이다.
독일의 경우가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조광래호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소속팀에서의 포지션이 무시된다는 인상마저 준다. 조 감독이 새로운 포지션을 찾게하는데 일가견이 있다지만 그것은 꾸준히 훈련하고 지도할 수 있는 클럽팀일 경우 성공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대표팀에선 다르다. 대표팀에 발탁된 선수라면 그 포지션만큼은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이며 몸에 익을만큼 익은 상태다. 대표팀에서 몇일 하는 훈련만으로 변화가 쉽지 않다. 자신의 포지션에 특화된 선수들을 모아놓고, 정작 경기에서 다른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 없다. 포항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뛰는 김재성과 알비렉스 니가타의 최전방 공격수 조영철을 오른쪽 윙백에 기용하고 선수들의 역량 부족을 탓하는 것은 불공정한 처사다.
물론 이는 모두 결과론일뿐이다. 조 감독의 선택이 적중했다면, 그 안목에 찬사가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K-리그에 숱한 수비형 미드필더와 윙백을 두고 다른 포지션의 선수를 기량이 앞선다는 이유로 기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해당 포지션 선수들에 대한 자존심 문제도 될 수 있으며, 대표팀 내에서도 포지션 주전경쟁이 아니라 어느 포지션에 기용될지 모르는 막연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특정 선수의 부재때마다 포지션 이동이 벌어지는 것은 팀의 안정감을 떨어뜨린다.
인재풀이 부족한 한국축구에서 다양한 실험은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도박은 안된다. 더욱이 레바논전은 친선경기가 아닌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행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한판이지 않았나.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