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75%의 지분을 갖고 있는 한전KPS의 A처장(1급)은 최근 정직의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사유는 이렇다.
그는 한전KPS 사업소의 기계부장으로 근무하던 1994년 대학동기와 함께 B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의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주식 1만8649주를 무상으로 받았다. 유상증자를 거치면서 A처장은 이 회사 지분의 16.8%(총 2만8729주)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
사실상 자기회사나 다름없으니 일감이 있으면 그 회사쪽에 챙겨주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한전KPS는 수력발전소 및 원자력발전소 등의 정비를 맡고 있는 공기업. 직원은 4500여명으로 지난해 8425억원의 매출액에 98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린 한국전력의 '알짜배기 자회사'다.
이번에 정직처분을 받은 A처장은 사업소장으로 근무하던 지난 2008년 1월부터 2010년 10월 1일까지 B회사의 대표이사인 대학 동기로부터 "사업을 도와달라"는 청탁을 받고 22건 30억여원의 공사를 지명 또는 수의계약 했던 것으로 감사원 감사결과 드러났다.
그는 "발기인으로 명의만 빌려줬을 뿐 주식보유 사실을 몰랐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회사설립 후 회사측에 "명의를 빼어 달라"고 요청했던 적이 있었던 것으로 볼 때 주식보유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어불성설로 해석됐다.
A처장은 또 자신이 주식을 보유한 업체가 능력있다고 판단해 지명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사업소에서 2006년 이후 경상정비공사 수주업체로 새로 진입한 협력업체는 B회사가 유일하고, 기존 정비업체의 시장장벽이 높은 점을 고려했을 때 설득력이 없었다고 감사원은 전했다. A처장은 지난 2007년에는 자신이 속한 사업소 관내에 B회사가 소속돼 있지않아 경상 정비공사(일상적으로 실시하는 정비공사)를 밀어주기가 곤란하자 터빈 보조설비 정비공사(계약금액 1억2850만원)를 수의계약으로 체결하기도 했다.
공기업에 다니면서 몰래 회사를 설립한 뒤 온갖 편법을 써 하도급 공사를 밀어준 '모럴 해저드'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비단 이 사례 뿐만 아니다. 한전KPS로부터 하도급 공사를 따내려면 '연줄'이 있어야 했다. 특히 전직 사우가 세운 업체를 특혜성 공사를 맡기는 '전관예우' 관행이 만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전KPS는 발전회사로부터 수주한 발전설비 정비공사 중 단순하고 보편화된 업무를 협력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형식으로 경영을 해왔다. 한전KPS는 하도급 공사 배정 시 협력업체 중 몇몇 업체를 지명한 뒤 경쟁입찰을 통해 업체를 결정하는 지명경쟁 입찰방식의 원칙을 정해놓은 상황.
그런데 지명기준이 모호해 특정업체가 반복적으로 공사를 수주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가령 삼천포 사업소에서는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5개 경상정비 하도급 분야별로 하도급 업체를 선정하면서 지명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채 소장 이하 각 팀장들이 모여 임의로 경쟁업체를 지명했다. 그 결과 2008년 기계분야에서 한번 지명업체가 변경되었을 뿐 나머지 4개분야는 특정업체가 동일분야에서 계속 계약을 체결했다.
특히 어느 업체가 하도급공사를 주로 수행하였는지를 분석한 결과 한전KPS의 전·현직 직원 출신 임원 및 주주가 운영하는 14개 업체 중 12개 업체가 지난 2007년부터 3년 간 전체 하도급 공사의 57.4%(242건 중 139건)를 수행했다.
한전KPS의 태성은 사장은 "윤리경영에 입각한 엄정한 업무처리와 정보공개로 투명경영 실현"을 경영원칙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런 윤리경영 방침은 있으나 마나한 '빈 껍데기' 원칙이나 다름없었다. 송진현 기자 jhso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