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입성한 일본 대표팀이 경기 전부터 녹초가 됐다.
일본 선수단 50여명은 14일(한국시각) 중국 베이징에서 전세기편으로 출발해 오후 3시 평양순안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4시간에 걸쳐 입국 수속을 하면서 경기장 적응훈련을 제 시간에 치르지 못했다. 베이징의 주중북한대사관에서 비자를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공항 관계자들은 입국 카드 기재 내용을 세세하게 따져 물었다. 이들은 "처음 (북한에) 입국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절차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완강한 입장을 취했다.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은 입국 카드 내용을 자세하게 적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국심사대에서 돌려 보내지기도 했다.
대개 원정 선수단에게는 간소한 입국절차를 하고 통과시켜주는 관례에서 보면 이례적인 일이다. 납북자 및 미사일 발사 등을 이유로 일본이 북한과 수교를 맺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다. 이에 대해 일본 스포츠지 스포츠호치는 "지난 8월 일본 측이 북한 선수단 입국시 까다로운 절차를 제시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북한 측은 일본 선수단이 가져간 바나나와 껌, 인스턴트 라면을 모두 압수했다"고 밝혔다.
철저한 입국 심사에 일본 선수단은 예민해 졌다. 일부 선수들은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공항 직원과 대면한 자리에서 "벌써 몇 시간째냐. 얼마나 더 걸리는 것인가"라고 볼멘 소리를 했다. 입국심사를 받는 사이에 세 차례나 정전이 발생하면서 동요하기도 했다. 결국 이들이 공항을 빠져 나온 시간은 오후 7시. 당초 훈련 예정시간이었던 오후 5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이들은 평양 고려호텔에 짐을 풀고 곧바로 김일성종합경기장으로 이동해 첫 적응훈련을 실시했다.
선수들은 원정 첫 날부터 호되게 당했다는 표정이다. 수비수 마키노 도모아키(쾰른)는 "(원정 전부터) 각오하고 있었지만, 축구 외적인 싸움을 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공격수 마에다 료이치(주빌로 이와타)는 "웃음 밖에 나오지 않더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일본 선수단은 15일 김일성종합경기장에서 북한과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5차전을 치른다. 일본은 승점 10으로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한 반면, 북한은 승점 3으로 남은 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더라도 최종예선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일본축구협회(JFA)는 선수단에게 경기 전까지 산책이나 쇼핑을 하지 말 것, 정치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 금지령을 내렸다. 일본 정부 측은 평양 원정에 나선 서포터스에게 경기장에 일장기와 응원도구 반입 및 구호를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박상경 기자 kazu1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