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으로 팽팽히 맞서던 경남고와 부산고의 경기. 5회초 경남고가 대거 5점을 올리며 리드를 해나가자 롯데 4번타자 이대호가 슬슬 그라운드쪽으로 걸어나왔다. 스트레칭과 러닝으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불펜포수와 얘기를 나누던 이대호가 걸치고 있던 점퍼를 벗고 연습투구를 시작하자 부산 사직구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대호가 실전경기에 투수로 등판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대호는 13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경남고와 부산고의 '부산야구 라이벌 빅매치'에서 소속팀 경남고가 8-3으로 앞서던 5회말 투수 나규호(LG)를 구원등판해 마운드에 올랐다.
부산고의 첫 상대타자는 고려대 4년에 재학중인 이명진. 이대호는 초구로 133km 직구를 선택했다. 결과는 파울. 2구째 137km 회심의 직구를 던졌지만 좌타석에 있던 이명진은 가볍게 밀어쳐 좌전안타를 만들어냈다. 머쓱해진 이대호는 부산고 3년에 재학중인 9번타자 정 현을 상대로 변화구를 던지며 유격수 땅볼을 유도하는 '위기관리능력'을 선보였다.
승부는 이제부터였다. 1번 황성용, 2번 손용석, 3번 손아섭 등 1군에서 뛰고 있는 롯데 팀 동료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이대호는 황성용을 중견수 플라이로 유도했으나 중견수 김민하가 아쉽게 공을 놓치며 1사 1, 2루의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이 순간부터였다. 이대호는 손용석과의 승부에서 볼카운트 2-1에서 바깥쪽 꽉 차는 121km 직구로 스탠딩 삼진을 잡아내 팬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2아웃. 이번에는 손아섭이 들어섰다. 이대호는 볼카운트 1-1에서 129km짜리 직구를 몸쪽에 던지는 과감한 승부로 손아섭을 중견수 플라이로 처리하며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경기장을 찾은 추신수가 "대호는 제구력 투수였다"고 말한 것 처럼 의외의 정교한 제구로 부산고 타선을 막아냈다. 기자실을 찾아 경기를 함께 지켜본 양승호 감독은 "내년에는 투수로 써야겠다. 손용석은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날 훈련 후, 경기를 지켜보던 강민호, 전준우 등 롯데 선수들도 진귀한 장면을 보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대호는 5회에 이어 6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팬들을 즐겁게 했다.
한편, 이날 경기에는 이대호의 투수 등판 말고도 갖가지 재밌는 장면이 연출돼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날 선발투수로는 롯데의 좌, 우 에이스인 장원준과 송승준이 부산고와 경남고를 각각 대표해 마운드에 올랐다. 경기 전 두 사람 모두 "120km도 안나올 것 같다"며 엄살을 부렸지만 막상 경기에서는 130km가 넘는 공을 뿌리며 뜨거운 분위기에 불을 붙였다.
친선경기인 만큼 정규시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들도 있었다. 부산고 손용석(롯데)은 타석에 들어서 마운드에 서있던 장원준을 상대로 공손히 인사를 한 후 타석에 들어서는가 하면 경남고는 5회초 올시즌 지명된 포수 김준태가 볼넷으로 1루에 걸어나가자 1루 베이스코치로 나가있던 장기영(넥센)과 곧바로 역할을 맞바꿔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이날 시구에는 피겨 스타 김연아가 나섰다. 이날 경기 전 김연아에게 시구 지도를 하게 된 행운의 주인공은 바로 송승준. 김연아와 송승준은 3루 덕아웃 뒤에서 한참동안이나 공을 주고 받으며 즐거운 모습을 보였다. 김연아가 오기 전 "내 투구폼과 똑같은 폼으로 공을 던지게 가르치겠다"고 당당히 말하던 송승준은 "예상 외로 공을 잘 던지더라. 내가 가르칠 게 없었다"며 김연아의 투구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부산=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