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영웅은 마지막 순간까지 불안했다.
협찬을 받은 헤어스타일과 말쑥한 베이지색 양복, 그리고 톤온톤으로 매치된 타이까지…. 그는 식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준비된 MVP였다. 그래서 더욱 '혹시나'하는 마음이 들었을 터.
하지만 기우였다. 7일 서울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2011 롯데카드 프로야구 최우수선수(MVP) 시상식. 주인공은 KIA 에이스 윤석민이었다. 총 91표 가운데 62표를 획득, 1차 투표에서 과반을 기록하며 꿈에 그리던 대한민국 최고 자리에 우뚝 섰다.
2007년 3.78의 준수한 방어율에도 불구, 지독한 불운 속에 한시즌 최다패(18패)를 당했던 아픔. 지난해 되살아난 불운의 악령 속 잇단 '사구 사건'과 악플, 어이없는 부상과 번뇌의 시간, 그리고 최근 'MVP를 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까지…. 힘겨웠던 순간이 마이크 앞에서 떠올랐다. 울컥한 감정은 그동안 눌러온 뜨거운 눈물로 솟구쳐 올랐다.
"투수로서 할만큼 했다"고 자부했던 시즌이었다. 4관왕이 선물처럼 따라왔다. '올해만큼은 내가 최고'라는 생각은 오만이 아니었다. 인간이기에 당연한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시상식을 일주일 앞두고 상황은 묘하게 흘렀다.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MVP란 특성상 '가장 가까운 기억'인 한국시리즈가 판도를 바꾸는듯 했다. 단연 한국시리즈 MVP에 오른 삼성의 '수퍼 히어로' 오승환에게 관심이 쏠렸다.
인터넷 상에는 '오승환이 MVP가 돼야 하는 이유'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먼 기억'인 윤석민은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불안했다. 그 시점에 놀랄만한 뉴스가 터졌다.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 오승환이 "팀동료 최형우를 위해 양보하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또 한번 언론의 관심은 오승환과 최형우에게 집중됐다. 윤석민으로선 마음껏 기뻐할 수만도 없는 기묘한 상황에 처하는 순간이었다. MVP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끝까지 좋은 경쟁을 하고 싶었다"는 말 속에는 서운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윤석민은 "2008년에는 2관왕(SK 김광현-다승, 탈삼진)이 MVP에 올랐다. 올해는 3관왕(최형우, 이대호) 아니면 신기록(오승환 최연소 200세이브 세계 기록)을 탄 선수들이 후보였다"고 말했다. 수상자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누가 받아도 무방한 MVP였다. 그래서 그는 공식행사를 마친 뒤 가까운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공식 인터뷰에서 잊은 말이 있었다. 우리 모두가 MVP"라며 경쟁 후보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딱 하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거꾸로 생각해 윤석민이 MVP를 받지 못했다면? 조금은 어색한 시상식이 될 뻔했다. 최고의 남자 윤석민은 그렇게 '불운'과 작별하고 있었다. 한국야구를 정복한 그의 시선은 이제 메이저리그를 향하고 있다.
한편, 앞서 열린 신인왕 투표에서는 삼성 중고신인 배영섭이 1차 투표에서 65표를 획득, 26표에 그친 LG 임찬규를 누르고 생애 딱 한번 뿐인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