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반가워요."
지난달 30일, 이명세 감독의 특별전이 열린 서울 광화문 미로스페이스에 고 최진실의 아들 최환희군이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그리운 얼굴,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다. 특별전의 마지막 날 상영된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는 스물두 살 풋풋한 최진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환희군은 이날 엄마가 출연한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봤다.
최진실과 박중훈이 펼치는 귀여운 사랑 이야기를 보며 웃음 지었던 관객들은 영화관을 빠져나가며 저마다 아련함과 그리움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환희군과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씨를 알아보고는 최진실을 다시 만난 듯 반가워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명세 감독도 제일 먼저 정옥숙씨에게 다가가 손을 꼭 잡으며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각별한 마음을 전했다.
환희군은 벌써 초등학교 4학년. 엄마의 영화를 본 소감을 묻자 "재미 있었다"고 수줍게 답했다. '어린 시절의 엄마 모습도 예쁘지 않으냐'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환희군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1박2일간 캠프를 갔다가 바로 영화관으로 달려온 길이었다. 피곤할 법도 하건만, 스크린 속 엄마에게서 한번도 눈을 떼지 않았다고 했다. 수줍음도 많고 말수도 적었지만 훌쩍 자란 키만큼 의젓한 모습이었다.
정옥숙씨도 이명세 감독에게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딸의 모습을 봤다. 진실이를 기억해주고 이런 자리에 초대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하며 감회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준희가 제 엄마를 닮았는지 영화를 보면서도 깜짝 놀랐다. 진실이가 말하는 모습이나 자는 모습, 표정, 말투 같은 게 준희랑 똑같다. 클수록 더 닮아간다"고 말했다. 영화에 담긴 최진실의 어릴 적 사진에서도 준희양의 모습이 오롯이 겹쳐졌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준희양은 친구들과 놀이에 푹 빠져 함께 오지 않았다. 환희군보다 두 살 어린 초등학교 2학년. 엄마와의 추억도 더 적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어진 자리에선 추억담이 펼쳐졌다. 1990년 개봉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최진실의 시대'를 연 작품. '남부군'에 이어 두번째로 찍은 영화다. 정옥숙씨는 "이 영화 촬영 당시가 생생하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스태프와 맛있는 음식도 자주 먹었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며 "모든 촬영장이 이 영화처럼 다 그렇게 훈훈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아니더라.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남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인기는 대단했다. 겨울 추위가 매서운 12월 29일 개봉했는데, 영화를 보기 위해 하루 전날부터 영화팬들이 종로 피카디리극장 앞에서 줄을 섰다. 이명세 감독은 "아침에 영화관에 갔더니 사람들 때문에 유리창이 깨질 정도였다. 매진사례를 보고는 낮부터 기쁨의 술잔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최진실의 인기도 엄청나서, 영화 포스터가 불티나게 팔렸다. 이 감독은 "포스터를 판 돈으로 영화사 직원들 월급을 줘도 됐을 정도"라고 최진실에 대한 추억을 보탰다.
이명세 감독 특별전을 찾은 배우 박상민도 자리에 들러 최진실의 가족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고 최진영과 각별한 사이였고 신인 시절 영화상 시상식에서 최진실과 함께 상을 받는 경우가 많아서 최진실과도 친해졌다. 정옥숙씨는 환희군에게 박상민을 '삼촌'이라고 소개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최진실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생기기를 바랐다. 특별전이나 추모관에 대한 아이디어도 나왔다. 최진실의 가족들이 모아둔 자료들도 상당하고, 사람들이 저마다 간직한 추억은 그보다 많으니, 아주 실현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했다.
정옥숙씨는 "아이들이 커가니 돌보는 것도 조금씩 힘에 부친다. 그래도 잘 자라는 게 기특하다"며 "많은 분들이 진실이를 잊지 않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환희군도 씩씩한 모습으로 손을 흔들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