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정상호는 그야말로 '만신창이'다. 허리 무릎 골반 발목 등 몸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정상호는 꿋꿋하다. 팀에 보탬이 된다면 당장의 아픔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의 의지를 따라오지 못하는 몸이 야속할 뿐이다. 결국 29일 홈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 때는 경기 전 진행된 훈련에 나서지 못했다. 경기에 나서기 위해 부상 부위에 대한 치료만 받았다.
정상호는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전경기 출전을 이어오고 있다. 4차전까지 13경기에 나섰고, 5차전마저 출전한다면 14경기다. 정상호 이전에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모든 경기에 나선 포수는 6명이다. 90년 이만수(삼성)을 시작으로 92년 김선일(롯데) 98년 김동수(LG) 2001년 홍성흔(두산) 2002년 조인성(LG) 2003년 박경완(SK)이 그 주인공. 정상호는 출전경기수에서 신기록 작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조인성이 13경기에 나섰고, 김선일 김동수 홍성흔 박경완이 12경기, 이만수가 9경기에 출전했다.
정상호가 특별한 것은 출전경기수 만이 아니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단 한차례도 교체 아웃된 적이 없다. 보통은 주전포수의 체력 안배를 위해 경기 막판 백업포수를 투입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백업포수 허 웅은 시즌 도중 신고선수에서 정식선수로 전환돼 첫 1군 무대를 밟았을 정도로 경험이 적다. 게다가 시리즈가 박빙 상황으로 흐르다보니 쉴 틈이 없다.
현역 시절 포수로 뛰었던 SK 이만수 감독대행은 포수가 얼마나 힘든 포지션인지 안다. 때문에 아픔을 참고 묵묵히 뛰는 정상호에게 유독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 감독은 "사실 정상호에게 휴식을 주고 싶었다. 박진만처럼 한경기 쉬게 해주려 했다. 2차전 때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하려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상호의 의지는 강했다. 호텔 방으로 직접 찾아온 이 감독에게 "쓰러지더라도 그라운드에서 쓰러지겠다. 끝까지 뛸 수 있다"고 말했다.
정상호는 사실 박경완의 그늘에 가려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한 '백업포수'였다. 정상호는 동산고 재학 시절 탁월한 어깨와 가공할만한 파워를 바탕으로 공수를 겸비한 대형 포수로 평가받아 2001년 1차 지명으로 SK의 유니폼을 입었다. 계약금은 무려 4억5000만원. 김광현(5억원) 입단 전까지 SK 신인 최고 기록이었다.
데뷔 첫 해부터 44경기에 나서면서 미래의 주전감으로 육성됐지만, 2002년 말 박경완이 FA(자유계약선수)로 SK에 오면서 기회를 잃었다. 박경완이 왼발 아킬레스건 수술을 받고 시즌 아웃된 2009시즌 중반부터 주전 마스크를 썼지만, 팀의 우승을 이끌지 못했다. 오히려 SK가 우승하지 못한 주요 원인으로 '박경완의 부재'를 꼽았을 정도였다. 결국 박경완이 돌아온 지난해 35경기 출전에 그쳤다.
만년 백업포수 정상호는 올해 박경완의 부재 속에 다시 기회를 잡았다. 이번에는 백업포수 허 웅, 최경철 등을 이끄는 당당한 주전포수였다. 그가 참을 수 없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이를 악무는 이유다. 정상호는 오히려 잔부상을 달고 산 자신을 탓했다. 그는 "이번에는 꼭 팀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온 힘을 쏟아 붓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철인' 정상호는 이렇게 대선배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