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전 박재상에게는 '귀족 딜레마'가 있었다.
당시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SK 선수단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었다. 김성근 전 감독이 지휘봉을 잡던 시절. 식사시간조차 줄여 연습하는 지옥훈련의 대명사였다.
타자들은 너무 힘들었다. 지옥같은 펑고훈련,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진행되는 특타. 삼성에서 SK로 이적한 박진만은 적응하지 못해 졸도하기도 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천민'이라고 불렀다. 상대적으로 투수들은 사정이 나았다. 집중조련을 받았지만, 훈련의 양은 타자들보다 많지 않았다. 그들은 '평민'이었다.
이 판국에 '귀족'들이 있었다. 시즌 중 부상으로 치료를 하는 '재활조"였다. 어깨를 수술한 박재상은 '귀족'이었다. 부상 부위를 체크한 뒤 재활 진도에 맞게 조심조심 훈련량을 늘려야 했다. 그러나 항상 박재상은 흙투성이로 식사를 하는 '천민들'을 부러워했다.
그는 각고의 노력끝에 팀에 합류했다. 사실 그의 야구센스는 탁월하다. 팀내에서도 수위를 다툰다. 시즌 막바지였던 9월 박재상은 종아리를 다쳤다. 그리고 시즌 막판 극적으로 돌아왔다.
타격감을 곧바로 되찾았다. 복귀전이었던 지난 6일 광주 KIA전에서 4타수 3안타의 맹타를 휘둘렀다. 탁월한 감각이었다.
문제는 수비였다. 쉽게 수비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SK 이만수 감독대행은 수비는 괜찮지만, 타격이 되지 않는 김강민을 함께 언급하면서 "박재상의 공격과 김강민의 수비 둘만 묶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대단했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수비에 대한 감각을 완벽히 잡았다. 결국 플레이오프에서 여러 차례 호수비로 부산 롯데 팬의 빈병 세례를 받기도 했다.
그는 상황이 요구하는 플레이를 제대로 한다. 플레이오프에서 그는 "난 2번 타자다. (정)근우가 워낙 좋기 때문에 번트만 잘 대면 된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한국시리즈 1, 2차전을 허무하게 내준 SK. 3차전 3회까지 0의 행진. SK에 필요한 것은 분위기를 전환시킬 수 있는 선취점이었다.
박재상은 이제 해결사로 나섰다. 4회 볼카운트 1-0. 호투하던 삼성 선발 저마노의 2구째 140㎞ 직구가 가운데로 몰렸다. 박재상은 힘을 실어 그대로 밀었다.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던 타구는 그대로 좌측 펜스를 넘어갔다.
SK의 한국시리즈 첫 홈런. 정말 의미심장한 선취점이었다. 2연패의 수렁에 빠진 SK는 3차전에서 어떻게 하든 이겨야만 했다. 선취점은 3차전 승리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박재상이 해냈다. 결국 SK는 2대1로 승리. SK 역습의 선봉에는 박재상이 있었다. 박재상은 "치는 순간 홈런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람의 덕이 좀 있지 않았나 싶다"고 겸손해 했다. 인천=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