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트시즌은 그야말로 초보 감독 시리즈다. KIA를 제외한 세팀의 사령탑은 모두 이번 시즌부터, 혹은 시즌 중에 지휘봉을 잡았다. 떨릴 수 있는 첫 경험. 하지만 SK 이만수 감독대행과 롯데 양승호 감독은 초보답지 않은 입담을 과시하며 포스트시즌을 뜨겁게 달궜다. 한국시리즈에서 상대팀을 기다렸던 삼성 류중일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앞선 두 감독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모든 것이 계산된 행동으로 보일 정도로 치밀했다. 후배인 류 감독은 이 감독에게 '감독 선배'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류 감독은 어떻게 심리전에서 승리했을까.
▶미디어데이, 기선제압에 성공하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24일 열린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 때부터 초보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미디어데이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시리즈가 몇 차전까지 가겠냐'는 질문에 재치있게 손가락 8개를 펼치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한국시리즈는 7전4선승제다. 손가락 8개는 현장을 술렁이게 할 만 했다. 류 감독은 이에 대해 "사실 재미있게 하려고 그랬다"며 "SK는 강한 팀이다. 지난 4년간 우승 3번, 준우승 1번을 차지한 것은 대단한 기록이다. 한 경기는 연장 접전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어 손가락 8개를 펼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4승1무3패로 우리가 우승할 것"이라며 웃었다.
미디어데이는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자리다. 사실 SK 이만수 감독대행이 먼저 재미를 봤다. 그동안 미디어데이가 1차전 선발을 알리는 자리였다면, 이 감독은 3차전까지 선발 카드를 모두 공개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했다. 의기양양했던 이 감독은 준플레이오프서 KIA를 3승1패로 제압했다. 결국 롯데와 삼성 두 초보 사령탑 역시 3차전까지의 선발을 공개해야만 했다.
류 감독은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플레이오프서 혈전을 치른 이 감독이 처음으로 1차전 선발만을 공개하면서 류 감독이 현장 분위기를 압도했다. 떨릴 수 있는 첫 경험이지만, 의연하게 넘겼다. 모든 게 류 감독의 의중대로 됐다.
▶시리즈서도 자신감은 여전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 때도 류 감독의 자신만만한 모습은 계속 됐다. 취재진과 대화 내내 여유가 넘쳤다. '있는 척'이 아니었다. 작은 행동 하나에서도 '초보'의 모습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전 행사가 진행된 뒤 심판진이 양팀 사령탑을 불러모았다. 이 감독이 항상 그렇듯 빠르게 홈플레이트로 걸어나왔다. 반면 류 감독은 덕아웃에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이 감독이 나온 뒤에 움직였다. 이 감독이 선배지만, 얼핏 보면 류 감독이 선배로 보일 만한 행동이었다. 뒤늦게 나왔지만 뛰지도 않았다. 감독으로서 품위를 지키려는 모습이었다.
고 장효조 감독의 아들인 장의태 씨가 시구를 마친 뒤에도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레전드를 기리는 남다른 시구. 류 감독은 또다시 덕아웃에서 걸어나왔다. 카메라를 보며 어색하게 들어가던 의태씨에게 악수를 건넸다. 가벼운 포옹을 나누기도 했다. 류 감독에게 정신없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없었다. 의태 씨를 직접 챙기는 등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장면까지 놓치지 않았다.
경기가 시작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감독이 서서 보는 것과 달리 류 감독은 편안하게 앉은 자세로 경기를 지켜봤다. 사인을 낼 때도 큰 움직임은 없었다. 매티스-차우찬-안지만-권 혁-오승환으로 이어지는 마운드 운용 역시 경기 전 밝힌대로 매끄럽게 진행됐다.
페넌트레이스에서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었다지만, 류 감독의 행동에는 여유가 넘쳤다. 모든 게 계산된 행동일 수도 있다. 코치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지만, 감독석에 앉아 큰 경기를 치르는 것은 처음이다. 첫 경험에서 떨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류 감독은 그런 모습을 감췄다. 결국 삼성 선수들은 든든한 리더에게 1차전 승리를 선물했다.
대구=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