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강릉종합운동장은 강원FC 주장 이을용(36)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이날 열리는 대구FC와의 2011년 K-리그 29라운드는 이을용이 13년 간의 프로인생을 마무리 하는 무대였다. 경기장 내외곽에는 이을용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중앙 스탠드 상단에는 이을용의 모교인 강릉제일고 동문들이 '모교에는 영광을! 강릉에는 자랑을! 강원도에는 기쁨을! 대한민국에는 희망을! 우리는 결코 그대를 잊이 않을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큼지막한 플래카드를 걸었다. 김상호 강원 감독은 이을용을 선발 명단에 포함시켰다. 그는 "은퇴 경기라고 해서 형식적으로 기용할 생각은 없다. 전후반 90분을 모두 뛰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 미드필더로 나선 이을용은 분주히 움직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폴란드전과 터키전에서 빛났던 왼발의 감각은 세월의 바람 속에 무뎌졌고, 움직임도 둔했다. 잇단 실수에 절로 고개를 숙였다. 슈팅은 빗나갔고, 상대 수비에 막혀 드리블도 여의치 않았다.
선배와 마지막으로 발을 맞춘 후배들이 힘을 냈다. 올해 K-리그에서 단 2승이 전부였던 강원은 후반 9분 김진용의 선제골이 터지면서 리드를 잡았다. 김진용은 이을용이 A대표팀 시절 입었던 유니폼을 입고 일명 '을용타(이을용이 2003년 동아시아축구선수권서 중국 선수를 가격한 것을 두고 네티즌이 만들어낸 단어) 세리머니'를 펼쳐 이을용과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이후 강원은 대구의 파상공세를 필사적으로 막아내면서 점수차를 지켜 결국 1대0 승리로 경기를 마무리 했다.
침착함을 유지했던 이을용은 작별의 순간에 결국 목이 메었다. 경기 뒤 은퇴식에서 가족과 함께 현역시절 활약상을 담은 영상을 지켜 본 이을용은 "그동안 (강원에서)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금은 은퇴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팬들 앞에 돌아올 것을 약속한다"고 울먹였다. 이을용은 "시원섭섭하다. 후배들이 승리라는 좋은 선물을 줘 너무 고맙다"고 했다. 이어 "1-0으로 이기고 있을 '때 잘 버텨서 이대로 끝났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 경기 중에는 집중을 하기 때문에 그다지 은퇴 경기라는 생각은 하지는 않았는데, 다 끝나고 후배들이 인사를 건넬 때 비로소 은퇴가 실감이 나면서 뭉클하더라"고 밝혔다. 내년 1월 터키 트라브존스포르로 지도자 연수를 떠나는 이을용은 "선수 시절 부상이나 힘든 일이 많았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아빠가 되지 못했다. 이제 훌훌 털어버리고 당분간은 가정에 충실할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강릉=박상경 기자 kazu1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