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단기전 승부가 한번씩 끝날 때마다 '착시현상'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긴 팀의 라인업은 천하무적처럼 보이고, 패배한 팀은 초라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한 SK도 지난 몇년간 쌓아온 저력이 눈길을 끌고 있다. 당장 지금 야구기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면 'SK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것이고, 지친 상태라도 시리즈에서 좋은 승부를 펼칠 것'이라는 항목이 많은 표를 얻을 것이다.
확실히 SK는 준플레이오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1차전을 내줬지만 선수들은 움츠러들지 않았고, 결국엔 갖고 있는 기량을 내보이며 역전극에 성공했다. 이로써 SK는 지난 2007년 이후 치른 6차례 단기전에서 초반 2차전까지는 4승8패였지만, 최종 성적은 21승10패가 되는 놀라운 과정을 또한번 보여줬다.
SK 선수들이 스스로 알아서 경기를 풀어나간다는 걸 증명한 장면이 12일 4차전에서도 나왔다. 0-0으로 진행되던 게임은 3회에 균형이 무너졌다. SK가 1사 1,2루 기회를 잡았고 여기서 SK 최 정의 좌월 2루타가 터졌다. 이때 SK는 1루주자까지 홈을 밟았다. 2-0이 되면서 SK가 사실상 기세를 장악한 순간이 됐다.
이 장면을 확대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루타때 1루주자까지 홈인하는 게 아주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 정의 타구는 너무 잘 맞아서 약간 라이너성으로 보이기도 했다. KIA 좌익수 김상현은 타구를 따라가면서 정석대로 '페이크 플레이'를 했다. 잡을 수 없는 타구라는 걸 알면서도 뒤로 달려가면서 일단 글러브를 머리 위로 한번 들어올렸다.
메이저리그에선 '디코이 플레이'라 부르는 이 동작에는, 상대 주자의 움직임에 한 타이밍 정도 브레이크를 걸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일종의 주자 기만 동작이다. 혹시 타구를 잡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주자에게 심어주면, 주자는 한차례 멈칫하는 것만으로도 한 베이스를 손해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1루주자 박재상은 기민했다. 박재상은 딱 하고 타구음이 나는 순간부터 곧바로 달렸고, 김상현의 동작에 아랑곳없이 멈칫하지 않고 끝까지 내달렸다. 물론 이 타구는 워낙 잘 맞았기 때문에 판단하는 게 그리 까다롭지는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도 경험이 적은 선수는 분명 멈칫할 여지가 있다.
박재상은 시즌 막판부터 장딴지가 아파 고생했던 선수다. 본래 갖고 있던 주루 능력을 100% 발휘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판단이 2점째 득점을 가능케했다. 이는 곧 최근 몇년간 박재상이 순간적인 타구 판단이 가능할 만큼 많은 훈련을 해왔다는 걸 의미한다.
바로 이런 부분이다. 세세한 플레이 하나가 단기전에서 위력을 발휘하는데, SK 선수들은 대체로 이런 면에서 강하다. SK와 관련된 '착시현상'은 단순히 라인업에서 오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플레이 때문인 듯 보인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