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서 점화된 '도가니'의 불꽃이 사회 곳곳으로 옮겨 붙어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경찰은 영화의 실제 모델이 됐던 광주 인화학교의 또다른 성폭력 사건을 밝혀냈고, 국회에서 '도가니 방지법'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광주교육청은 인화학교에 대한 폐교 조치를 밟고 있다. 전국의 장애인시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실태 파악도 시작됐다.
'도가니'처럼 실화 영화는 그 파급력이 대단하다. '도가니'의 소재는 2005년 MBC 'PD수첩'에 보도됐고 2008년에는 공지영 작가가 포털사이트에 소설을 연재해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영화처럼 파장이 크지는 않았다. 이처럼 영화가 유독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이유가 뭘까.
우선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같은 내용이어도 글을 읽는 행위보다 영화적 표현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미지와 소리로 만들어낸 영화는 생생함에 있어서 다른 매체를 훨씬 앞선다. 사람들이 받는 감흥과 충격의 강도 또한 마찬가지다. 때문에 극장 밖에서도 그 감정은 지속력을 갖고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이태원 살인사건'이나 '도가니'처럼 수년 혹은 수십년씩 이어지고 있는 현실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사건의 곁가지들을 쳐내고 압축해 보여주기 때문에 좀 더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사건의 파급력만 놓고 보자면, 영화적 상상력과 각색은 사건을 더욱 극적으로 전달하는 데 기능적인 역할을 한다.
영화는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 점에서도 영향력이 크다. '도가니'는 개봉한지 3주를 갓 넘긴 현재 385만명을 동원했다.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영화를 스스로 '선택'해 본 사람이 벌써 이만큼이라는 얘기다. '읽는 행위'에 공력이 드는 언론보도나 책과 달리 비교적 쉽게 선택하고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도 영화는 유리하다.
영화 매체의 영향력과 사건 자체가 지닌 추악함, 그리고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결합돼 탄생하는 것이 바로 실화영화다. 때문에 실화영화는 잊혀진 사건과 은폐된 진실을 밖으로 끄집어내 사회를 고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