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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포수가 미웠던 KIA 막둥이 심동섭, "형, 미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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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이 어찌나 원망스러웠는데요."

'막내'가 뿔났다. 여드름투성이 얼굴에 늘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선배들의 심부름을 도맡았던 막내다. 그러나 가슴 속에 용솟음치는 승부욕 때문에 난생처음 역정을 내버렸다. 준플레이오프를 치르는 KIA 선수단의 '막둥이' 투수 심동섭의 이야기다.

지난해 광주제일고를 졸업하고 KIA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심동섭은 올해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포함됐다. 지난해에는 1군에서 고작 5경기 밖에 뛰지못한 풋내기였지만, 올해는 한층 좋아진 기량으로 정규시즌에 57경기나 출전해 방어율 2.77에 3승1패 2세이브 7홀드를 기록했다. 특히나 시즌 후반 활약이 눈부셨다. 8월에는 12경기에 나와 방어율이 1.42였고, 1패 1세이브 1홀드를 기록했다. 9월에도 6경기에서 9⅔이닝 동안 방어율 0을 찍었다. 때문에 심동섭은 임찬규(LG) 배영섭(삼성) 등과 함께 올해 신인왕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런 심동섭에게 포스트시즌 무대는 심장이 터질만큼 감격적인 기회다. 그런데, 포스트시즌 첫 등판 기회가 허무하게 날아가버렸다. 팀 불펜포수의 지나치게 자세한 배려심 탓이다. 때는 인천 문학구장에서 SK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이 열린 지난 9일. KIA는 7회말 SK 안치용에게 동점 홈런을 허용하는 바람에 2-2로 맞선 채 연장에 돌입했다. 당시 마운드에는 7회 2사부터 던진 한기주가 여전히 버티는 상황. 투수 교체가 필요했고, 불펜에는 8회쯤부터 심동섭과 유동훈 등이 몸을 풀고 있었다.

몸이 풀려갈 수록 심동섭의 가슴은 부풀었다. 꿈에도 그리던 포스트시즌 등판이 눈앞에 다가온 듯 했기 때문이다. '나가면 진짜 위축되지 말고 잘 던지자!' 속으로 다짐하고 또 했다. 하지만, 이 꿈은 물거품이 돼 버렸다. 심동섭의 공을 받아주던 불펜포수가 대뜸 "안 되겠다"고 하더니 코칭스태프에게 "동섭이가 좀 긴장한 것 같습니다"라고 보고한 것. 결국 심동섭의 등판은 무산되고 말았다.

가만히 이 상황을 지켜보던 심동섭은 속이 들끓었다고 한다. 심동섭은 11일 광주구장에서 준플레이오프 3차전을 앞두고 당시를 떠올리며 "어찌나 화가나고 형(불펜포수)가 밉던지 몰라요. 대체 왜 그렇게 말했냐고 막 따졌어요"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하지만, 심동섭은 이내 마음의 짐을 툭툭 털어냈다. "또 기회가 오겠죠. 기회만 주신다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다 잡아낼 거에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하고 난 지 몇 시간 후. 심동섭은 드디어 포스트시즌 등판 기회를 잡았다. 0-0이던 6회초 1사 1, 2루 때 마운드에 오르게 된 것. 하지만, 경기 전 씩씩했던 심동섭은 첫 무대가 긴장된 듯 했다. 결국 SK 4번 박정권에게 볼넷을 내준 채 터벅터벅 마운드를 내려오고 말았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