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국제적인 골프 대회를 열때마다 주최측에서 가장 고민하는 것은 갤러리 통제다.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늘 대회가 끝나면 외국 선수들은 얼굴을 붉힌다. 하지만 실제로 제일 손해를 보는 선수는 최고 인기를 누리는 한국 선수들이다. 선수들이 경기중 바라는 것은 절제된 응원이다.
9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골프장에서 끝난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는 여기저기에서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됐다. 선수와 갤러리가 신경전을 벌이고, 갤러리와 갤러리끼리, 또 갤러리와 진행요원이 험한 말을 주고 받았다. 1만2000여명의 대규모 갤러리 중에서 무려 2000여명이 넘는 갤러리가 챔피언조인 최나연-청야니-양수진을 따라다녔다. 발디딜 틈이 없었다.
2번홀에서는 황당한 일이 있었다. 티샷을 준비하며 코스 공략지점을 고민하던 양수진을 향해 한 중년 남성 갤러리가 "양수진 선수 얼굴 한번 돌려봐요. 사진 좀 찍게"라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옆에 있던 갤러리 중 상당수가 "아니, 아저씨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경기 중인 선수에게 그게 무슨 요구죠"라며 오히려 화를 냈다. 그 남성은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2번홀 페어웨이로 선수들이 이동할 때는 진행요원들과 갤러리가 엉켰다. 몇몇 갤러리는 페어웨이를 가로질러 3번홀로 건너갔다. 진행요원이 "이러시면 안됩니다. 페어웨이로 건너다니는 경우가 어딨습니까. 로프 밖으로 나오시면 안됩니다. 마구 밀치시면 다칩니다"라며 읍소까지 했다. 몇몇 갤러리는 자신들을 제지하는 진행요원에게 막말을 하며 버티기도 했다. 한 여성 갤러리는 "사람을 어떻게 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당신 뭐냐"며 통제에 따르지 않았다. 옆에서 다른 갤러리들이 "퇴장시켜라, 뭐냐 저 사람"하며 그 여성을 핀잔주자 그제서야 사태가 마무리됐다.
청야니는 갤러리의 소음때문에 몇번이나 어드레스를 풀었다. 최나연도 마찬가지였다. 최나연의 캐디는 쉴새없이 손가락을 입에 갖다댔지만 그래도 소란스러움은 가시지 않았다. 휴대전화 소리가 울리고,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나고, 그 와중에 선수들은 집중력을 잃었다.
한국에서 열리는 골프대회에 이런 일은 일상이다. 갈수록 골프문화가 발전되고, 갤러리들의 인식도 성숙되고 있지만 늘 몇몇 갤러리가 문제다.
휴대전화와 카메라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선수와 갤러리의 인식 차이가 있다. 갤러리는 스윙할때만 찍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자꾸 카메라 셔터 소리를 들으면 신경이 쓰인다. 최경주는 "언제 또 셔터 소리가 들릴지 몰라 조마조마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샷이 흔들린다"고 말한다.
이번 대회에 앞서 조직위원회 측은 안내문을 배포했다. 이동전화는 휴대를 금하고, 사진 촬영은 엄격히 금지한다고 고지했다. 하지만 이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선수들은 갤러리를 비난할 수 없다. 프로골퍼는 팬의 사랑을 먹고 산다. 그럼 정도에 어긋한 과도한 사랑 표현은? 집착이자 스토킹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인천=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