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홍보가 과했을 때 오는 배신감보단 훨씬 낫죠."
700만 관객을 훌쩍 넘기고 가을 바람이 꽤 매서워졌는데도 아직 극장가에서 살아있는 '최종병기 활'. 이 영화에서 또 한 사람의 주연인 '쥬신타' 역의 류승룡은 담담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영화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찍을 때는 그저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영화를 알리는 게 좀 늦어졌지만 잘 만들기만 하면 알아서 알려질 거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죠." 극중 변발을 선보인 탓에 '까까머리'가 된 데다 피부도 검게 탄 류승룡은 다른 작품에서와는 상당히 다른 이미지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이거, 많이 하얗게 된 거예요"라며 활짝 웃었다.
▶흑인이 다 됐어요
'최종병기 활'은 그가 외모 변신을 가장 많이 한 작품에 속한다. 웬만하면 가발로 대체할 청나라 시대 변발을 직접 선보였다. "좀 망설였는데, 리얼한 '야생'을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했어요. 삭발이면 차라리 괜찮은데, '반삭(머리 앞쪽 반만 깎는 것)'이니까 좀 주저가 되더군요. 그래도 배우니까 다행이지, 멀쩡한 40대가 그러고 있으면 '미친 놈' 소리 들었을 거예요." 오히려 나중에는 파격적인 변발이 마음에 들었다. "머리를 뒤쪽 반만 묶으니 꽤 괜찮더라고요. 스타일리시하고요. 그런데 결국은 그냥 놔두지는 못하고 다 깎았어요." 피부색도 정말 검게 변했다. "촬영 끝났을 때는 거의 흑인이었어요. 정말 많이 하얗게 됐는데, 아직도 검다고들 하네요." 그는 딱히 "고생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한없는 노력은 모습에서부터 묻어났다.
▶연기는 '공인된 울부짖음'
"딴 데서 감정을 터뜨리면 욕 먹죠. 그런데 연기로는 뭐든 가능해요. 전 그게 정말 너무 좋았어요." '최종병기 활'에서도 자타공인된 류승룡의 '명품 연기'는 여전했다. 한국어로 된 대사가 한 마디도 없음에도 표정만으로 완벽하다고 평가를 받은 연기다. 애초 그는 학창시절에 반항심, 폭력성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연극 무대에 섰다. "사춘기 남자애들은 어디로 터질지 모르는 '분노'가 있단 말이죠. 하하. 근데 저는 연극을 하면서 그걸 굉장히 순화시켰어요. 저 자신도 정말 편해지더군요. '공인된 울부짖음'으로 내 안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게 처음부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그 뒤로는 학문으로서 제대로 하고 싶다고 목표를 세우고,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지요."
▶연기자 아니었다면 광고인
어딜 봐도 배우가 천직인 그는 의외로 "연기를 하지 않았으면 광고 쪽 일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뭔가 아이디어를 내고 창조하는 일을 좋아해요. 연기라는 것도 사실 캐릭터를 창조하고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저한테 잘 맞는 것 같아요." 류승룡은 '카피'를 만들어내는 데도 아주 능하다. 전작 '아이들…'의 인터뷰 때는 스스로 '중년 귀요미'라는 컨셉트를 만들어냈다. "중년 귀요미라는 말은 제가 만든 거예요. 많이들 써달라고 했더니 정말 많이 이용하시더라고요. 영화 '베스트셀러' 때 '엄정화의, 엄정화에 의한, 엄정화를 위한 영화'라는 말도 제가 만들어냈고요. 이번의 '쥬신타'에 대해서는, 글쎄요…'모태 변발'이나 '변발 투혼'이 어떨까요?"이예은 기자 yeeune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