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홈런, 3타점(LG)→12홈런, 27타점(넥센).
넥센의 4번 타자 박병호만큼 올 시즌을 드라마틱하게 보낸 선수도 드물 것이다.
늘 '차세대 거포'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을 뿐 LG에서 그의 자리는 없었다. 그리고 트레이드 마감 시한인 7월31일, 그는 2005년 데뷔 이후 다섯 시즌을 뛰었던 LG를 떠나 넥센으로 자리를 옮겼다. "LG에 입단했을 때 가졌던 꿈을 펼치지 못하고 떠난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박병호에게 새로운 팀에서의 희망보다는 아쉬움이 먼저 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넥센은 그에게 '약속의 땅'이었다. 팀을 옮겨오자마자 그는 4번 타자의 완장을 찼다. 올 시즌 LG에서 고작 15경기에 나와 16타수 2안타 1홈런 3타점에 그치며 그라운드보다는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많았던 선수에겐 파격적인 특혜였다. 그만큼 박병호에게 넥센이 거는 기대는 컸다.
그런데 LG와 달리 타석에서 선풍기가 돌듯 방망이를 시원하게 돌리다 삼진을 먹고 들어와도 넥센 김시진 감독은 전혀 타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했다" "시원한 스윙이 마음에 든다. 4번 타자는 그래야 한다"며 박병호의 등을 두들겨줬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옛말이 있지 않은가, 새로운 팀 분위기에 점점 적응을 하기 시작한 박병호의 방망이는 마침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박병호는 8월에만 23경기에 나서 3할7리의 타율에 6홈런 19타점을 올리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조급함이 사라지니 노림수가 늘어나고 타석에서의 요령도 생겼다. 알드리지 강정호 유한준 등을 번갈아가며 4번 타자에 기용했지만 좀처럼 효과를 보지 못했던 넥센에게 박병호는 '미친 존재감' 그 자체였다.
9월에 와선 타율은 1할9푼1리로 떨어졌지만, 5홈런 7타점에다 볼넷의 갯수가 8월의 8개에서 16개로 딱 2배 늘었다. 다른 팀의 견제가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도 된다.
김시진 감독은 일찌감치 "내년 우리팀의 4번 타자는 당연히 박병호다. 정상적으로 시즌을 소화하면 25~30홈런도 너끈히 칠 우리팀의 대표 거포로 성장할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병호에 대한 팀의 기대감이 얼마나 큰지는 2일 목동 한화전에 앞서 알려졌다. 오는 7일 왼 발목에서 돌아다니는 뼛조각 제거 수술을 시키기로 결정한 것. LG 때부터 이미 있었지만, 사실 경기를 뛰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그래도 향후 혹시 부상으로 전이될 수 있다고 판단, 아예 근원을 제거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수술 전 휴식을 주기 위해 시즌 잔여 2경기에는 엔트리에서 빼기로 했다.
팀의 배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을까, 올 시즌 마지막 출전 경기인 2일 한화전에서 박병호는 2회말 120m짜리 대형 솔로포를 터뜨리고 4회말 1타점 적시타를 날리더니 8회말엔 좌익수 옆을 꿰뚫는 3루타를 때려내는 등 2루타 하나만 빠진 사이클링 히트급의 맹활약을 해냈다.
홈런 1개를 칠 때마다 모교인 서울 영남중학교 야구부에 10만원씩 기부를 하고 있는데, 올 시즌 데뷔 후 처음으로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며 모교에 쑥스럽지 않을 정도의 기부금도 낼 수 있게 됐다.
박병호는 "팀이 패한 것이 아쉬울 뿐 사이클링 히트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며 "내게 정말 의미있는 한 해였다. 자신감을 가지고 야구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김시진 감독님을 비롯해 팀에 너무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뼛조각 때문에 가끔 통증이 있는데, 내년부터 풀타임으로 뛰기 위해 아예 수술을 하기로 했다"며 "간단한 수술이고, 재활 기간도 짧다. 수술을 잘 마친 후 동계훈련을 잘 소화해 내년 시즌 더 발전한 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목동=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