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랬다. 마치 패한 장수를 생포한듯 했다. 질문이 아닌 취조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모욕적이었다. 손님이나 패장에 대한 예의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중국과의 준결승전을 마친 직후인 24일 밤. 중국 허베이성 우한스포츠센터의 넓직한 공식인터뷰장에는 수많은 중국 취재진이 모여있었다. 인터뷰 진행자 양 옆으로 패한 한국 감독과 승리한 중국 감독이 앉아 인터뷰에 응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묘했다. 질문은 한국측에만 집중됐다. 중국 감독은 할 일이 없어 따분하다는듯 연신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통상 질문은 승장에게 집중된다. 머리속이 복잡할 패장을 배려해 꼭 필요한 질문만 짧게 한다. 기자와 취재원을 떠나 인간에 대한 예의 차원이다.
하지만 중국 취재진에게 예의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한국을 자극했다.
수준미달 중국 취재진의 국수주의적 질문 공세가 시작됐다. 선수 대표로 참가한 오세근에게 한 중국 기자는 '7번(이리)를 왜 팔꿈치로 가격했나?'라고 물었다. 오세근은 "경기 과정의 일부였다"라고 답했다.
여의치 않자 질문 공세는 허 재 감독에게 이어졌다.
'당신은 유명한 3점슈터였는데 왜 한국 선수들은 단 5%(1/20) 밖에 성공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허 감독은 심기가 불편해보였지만 꾹 참고 "중국이 수비를 잘했다"고 답했다.
인내심의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중국에서 열려 심판판정이 불리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는데 오늘 경기도 그랬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실력의 한계를 인정하라는 듯한 조롱섞인 도발이었다. 허 감독은 굳은 표정으로 "노 코멘트"라고 답했다. 이 순간 일부 중국 취재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한 중국 기자가 '경기전 중국 국가가 울려퍼질 때 한국 선수들은 왜 움직였는가'라는 상식 밖 질문을 던졌다. 중국 국가가 울릴 때 체육관을 가득 메운 중국인들은 마치 전쟁에 나서는 병사들처럼 실내 체육관이 떠나갈듯 우렁찬 목소리로 국가를 따라불렀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국가가 끝나갈 무렵 한국선수들의 작은 움직임을 포착한 중국 기자의 항의 섞인 말이었다.
질문을 전달해야하는 중국측 통역과 한국측 통역도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허 감독에게 질문이 전달되기까지 통역끼리 정확한 질문 내용 확인을 위해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이를 전달받은 허 재 감독. 인내심의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얼굴이 벌개지며 꾹꾹 참던 화가 폭발했다. "뭐 그런 걸 물어봐?"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중국 취재진이 술렁거렸다. 퇴장하는 허 감독을 향해 '우'하는 야유가 터졌다. 한 중국 기자는 한술 더 떠 "Go back home(네 나라로 꺼져)"을 외쳤다.
전날인 23일 열린 이란과 요르단 전에서는 한 중국 사진기자가 이란 선수들 바로 뒤에서 "짜이요, 요르단(요르단 파이팅!)"을 계속 외쳐 이란 선수단을 흥분시킨 바 있다. 취재를 위해 허용된 공간에서 중국 우승의 걸림돌일 수 있는 강호 이란의 탈락을 소리를 내 응원한 몰상식한 행동이었다.
객관적인 사실 전달을 사명으로 일해야 하는 기자들이 보여준 이해할 수 없는 행동. 그들은 기자라 불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저 국수주의로 똘똘 뭉친 13억 중국민 중 하나였을 뿐이다.
우한(중국)=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