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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전을 앞둔 한국남자농구 세 가지 청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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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남자농구는 아시아에서 애매한 위치다. 중국에 이은 확실한 2인자가 아니다.

오히려 심각한 갈림길에 서 있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강호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고, 2류 국가로 떨어질 수도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한국농구연맹(KBL)과 대한농구협회(KBA)의 무능력한 행정력으로 인한 일상적인 편파판정, 준비 부족으로 인한 대표팀의 혼선, 공인구에 대한 미숙한 적응도 등이 외적인 변수였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한국남자농구의 객관적인 전력 자체가 저하됐다는 사실이었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한국남자농구는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다.

그러나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 이후 전환점을 마련했다. 착실한 준비로 대표팀 시스템을 확립했고, 그 효과는 이번 대회에도 이어지고 있다.

아직도 한국남자농구는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이제 해 볼만은 하다. 여러가지 청신호들이 포착된다.

▶저평가된 양동근과 이정석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 중 하나는 김승현이었다. 한국의 야전사령관으로 중국 가드진을 무력화시켰다. 넓은 시야는 독보적이었다.

그러나 김승현은 이후 추락했다. 오리온스 구단과의 갈등에 의한 여러가지 변수들이 가장 큰 문제. 그러나 기본적으로 김승현 스스로가 성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초한 추락이었다.

그 공백은 양동근과 이정석이 메워야 했다. 사실 그들은 김승현처럼 선천적인 가드는 아니다. 그러나 타고난 성실함과 파워로 대표팀의 주전가드로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평가는 좋지 않았다. 특히 "경기를 풀 줄 모른다"는 혹평에 시달렸다. 사실 한국의 가드진은 중국이나 중동에 비해 능력치가 높지 않다. 하지만 수비력만큼은 최상이다. 레바논을 대파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철저한 가드진의 압박수비였다. 게다가 최근 5년간 축적된 국제대회 경험으로 가드로서의 능력 자체가 업그레이드됐다.

여전히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문제가 있지만, 속공과 강한 수비력은 특유의 장점이다. 수비력을 바탕으로 한 가드싸움을 해볼 만 하다는 것이다.

▶배수의 진을 친 김주성

김주성은 아시아권에서도 손꼽히는 파워포워드다. 뛰어난 스피드와 높이로 한국의 골밑을 책임졌다. 그러나 골밑 몸싸움은 여전히 약점으로 지적됐다.

항상 제 몫을 해준 김주성이지만, 한국의 골밑은 여전히 2% 부족했다.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이승준이 히든카드로 등장했지만, 노련미에서 부족했다. 하승진의 높이는 강력했지만, 잔부상과 함께 스피드가 떨어져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 김주성은 배수의 진을 쳤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고 했다. 물론 이번 대회 우승하면 런던올림픽이 마지막 대회다.

그는 마지막 투론을 불사르고 있다. 거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대표팀 맏형의 이런 모습은 하승진 오세근 등 대표팀 센터들에게 자극이 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농구는 '유리농구'라는 혹평을 들었다. 상대의 거친 몸싸움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다르다.

▶대표팀 사령탑다운 허 재 감독

현재 대표팀 사령탑 발탁 시스템은 이해하기 힘들다. '플레이오프 우승팀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맡는다'는 게 원칙이다.

사실 대표팀 감독은 한국농구에서 가장 뛰어난 감독이 맡아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불과 2년 전만해도 대표팀을 꾸리는 것 조차 버거운 상황이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프로감독들은 대표팀 사령탑을 맡기를 꺼려했다. 결국 '리그 우승팀 감독이 대표팀을 맡는다'는 원칙이 정해졌다. 대표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없는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다.

KCC 허 재 감독은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우승팀 감독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2년 전 톈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적이 있다. 당시 한국은 졸전을 거듭, 7위에 그쳤다. '톈진 참사'라고 그랬다.

당시 대표팀 시스템은 형편없었다. 경쟁국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황. 대표팀 역시 급조됐다. 부상자가 너무 많아 연습경기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조직력, 객관적인 전력, 연맹과 협회의 지원 자체가 모두 부족했다.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도 허 감독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휘어잡았다. 당시 '누가 가도 성적이 안 나는 상황에서 허 감독의 카리스마가 없었다면 대표팀 자체가 사분오열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허 감독은 당시 대표팀 초보감독이었다. 7위는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 허 감독에게 이것을 뒤엎을만한 능력은 없었다.

2년의 시간이 흘렀다. 허 감독은 더욱 노련해졌다. 레바논전에서 한국은 준비를 많이 했다. 특히 강하면서도 다양한 수비력은 인상적이었다. 허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다워졌다는 의미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