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용병은 다루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말도 통하고 문화도 맞는 국내 선수와 다른 이방인인만큼 여러가지 장벽이 있다는 것이다. 이적시장이 열릴 때마다 선수들이 돌고 도는 축구, K-리그에 경우 한 팀에서 오랜 기간 뛰는 외국인 선수를 찾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대부분 언어와 문화, 리그 스타일이 적응하지 못해 1년 남짓한 기간 만에 한국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적응에 성공해 오랜 기간 사랑을 받는 선수들도 존재한다. 수원 삼성의 공격수 스테보(29)가 그 중 하나다.
스테보는 전반기 부진을 겪었던 수원이 야심차게 영입한 선수다. 2007년 전북 현대에 입단해 2009년 포항 스틸러스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이끌기까지 활약상을 기억하고 있는 만큼 믿고 쓸 수 있었다. 러시아리그 암카르 페름에서 뛰었던 스테보도 수원의 제의를 혼쾌히 받아들였다. 최원창 수원 구단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스테보의 자녀들이 기회가 될 때마다 '한국에 가자'고 졸랐다고 하더라. 가족들의 한국 사랑이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수원 유니폼을 입은 스테보는 리그 8경기에 나서 6골을 기록하며 수원의 후반기 도약에 일조했다.
윤성효 수원 감독은 스테보를 두고 "국내 선수들보다 다루기가 쉽다"고 웃었다. 훈련이나 식생활 모두 꿰차고 있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팀 동료들도 불과 두 달 남짓한 사이에 팀에 적응한 스테보가 놀라운 눈치다. 이상호는 "여지껏 많은 외국인 선수들을 봤지만, 스테보 같이 한국인 같은 용병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소속팀을 위해 조국의 부름마저 정중히 거절하기도 했다. 스테보는 최근 2012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12) 예선을 치르고 있는 마케도니아 대표팀의 호출을 받았다. 유럽에서 아시아 무대 활약을 인정 받기가 쉽지 않은 만큼 스테보에게는 천금같은 기회였다. 하지만, 어려운 팀 사정이 마음에 걸렸다. 스테보는 윤 감독을 찾아가 "비행기로 왕복하는 시간이 너무 길고 힘들다. 팀이 우선이다"며 마케도니아행 대신 수원에 남겠다고 말했다. 내심 스테보가 남아주기를 기대했던 윤 감독이 기뻐한 것은 당연하다.
스테보는 현재 부상 중이다. 1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치른 조바한과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상대 수비수와 공중볼을 경합하던 도중 머리를 부딪혀 전두골(이마뼈)에 금이 갔다. 부상 뒤에도 90분 경기를 모두 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윤 감독은 "한동안 경기에 나서기 힘들 것으로 봤는데 대구전(24일)부터 뛸 수 있다고 하더라. 강원전을 앞두고 '경기만 잘 치르고 오라. 다음 경기부터 나갈 것'이라고 큰 소리를 치더라"고 말했다.
스테보의 응원이 통했는지 수원은 18일 강원전에서 마토의 결승골에 힘입어 1대0으로 승리했다. 13승3무9패 승점 42가 되면서 6강행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 '한국형 용병' 스테보의 존재는 살얼음판을 걷는 수원이 넘어지지 않는 힘이다. 강릉=박상경 기자 kazu1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