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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끝내기 만루포 차일목,"잠도 잘 못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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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에는 '이범호 타임'이 있다.

주루에 있어 완전치 않은 몸이라 경기당 딱 한번 대타로 나설 수 있다. 그 타이밍 잡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18일 광주 LG전. 3-3이던 11회말 1사 1,3루의 찬스가 왔다. 투수는 임찬규, 신종길 타석이었다. 딱 1점이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 KIA 벤치는 주저 없이 '이범호 카드'를 빼들었다.

"(신)종길이한테 승부를 걸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범호를 내면 만루 작전으로 갈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 타자인 차일목이 임찬규에게 3타수2안타로 강했던 점도 고려했다." 경기후 KIA 조범현 감독의 설명이다.

조 감독의 기대를 차일목은 저버리지 않았다. 임찬규의 초구 가운데 높은 체인지업에 배트가 주저 없이 돌았다. 까마득히 비행한 타구는 가득 들어찬 광주구장 왼쪽 관중석으로 빨려들어갔다. 올시즌 첫 끝내기 그랜드슬램이 작렬하는 순간이었다.

"끝내기 만루홈런이요? 만루는 커녕 끝내기 홈런도 생애 처음이에요." 방송 인터뷰 중 이날 선발 서재응에게 면도 크림 세례를 듬뿍 받아 하얀 얼굴이 더욱 하얗게 변한 차일목. 이범호가 대타로 나가는 순간 그의 느낌은 어땠을까. "아 나한테 오는구나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긴장이 되지는 않았구요. 다만 (임)찬규가 오늘 직구 제구가 잘 안되길래 무조건 초구, 2구 이내에 변화구 승부를 걸거라고 생각하고 들어갔어요. 비교적 쉬운 예상이었던 셈이죠." 포수다운 노림수였다. 팀에 천금같은 승리를 안겼다. 2위 희망을 되살려낸 한방이었다.

공격이 전부가 아니었다. 5회 이후 3-3의 타이트한 동점 상황을 끌고 온 숨은 공신도 차일목이었다. 특히 6회 2사후 부터 약관의 심동섭의 4이닝 무실점 호투 뒤에는 차일목의 절묘한 리드가 있었다. "병규 형과 높은 직구로 승부한 거요? 오늘 동섭이 정도 직구면 큰 걸 맞지 않을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불펜 투수와 포수는 보이는 성적보다 연봉을 더 많이 줘야한다는 말이 있다. 차일목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김상훈의 수술로 풀타임 주전으로 마스크를 쓰고 있는 그는 남모를 마음고생이 심했다. "후반기 성적 떨어지고 지는게 마치 저 때문인 것 같더라구요. 투수 리드 잘못해서 진 것 같아 투수에게도 미안하니 잠도 잘 안오고…. 전반기 때는 흘러가는대로 했었는데." 정신적 스트레스가 전부가 아니다. 프로 데뷔 첫 풀타임 출전은 부지불식간에 체력 저하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잘 못 느꼈는데 몸이 쳐지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요즘 넘어갈 만한 (잘맞은) 타구가 펜스 앞에서 잡히더라구요. 아까도 펜스 앞에서 떨어지는줄 알고 한참 봤는데요. 어차피 외야가 전진하고 있어서 끝내기는 되겠구나했어요."

차일목의 목표는 딱 하나다. "힘든 상황이지만 선수들 모두 포기 없이 포스트시즌에 올라가서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내가 나가서 안좋다는 말만 안들었으면 싶네요."

광주=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