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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만난 최동원, "롯데 감독은 꼭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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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자, 내 부탁하께. 아프다고 쓰지 마소."

감히 말하건대, 고 최동원 한화 2군 감독을 지탱해온 것은 10할이 자존심이었다. 그 오롯한 자존심은 작은 흠결조차 용납하지 않았던 대쪽 선비와도 같았다. 그는 생의 마지막을 눈앞에 둔 순간에도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했다.

그래서였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 기자의 사명이지만, 고인의 부탁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 지난 7월22일 기자가 쓴 <핼쑥해진 최동원, "걱정마세요. 괜찮습니다">는 엄밀히 말해 팩트(사실)가 잘못된 기사였다. 당시 최동원은 괜찮지 않았다. 고인을 생전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기자는 그 사실앞에 충격을 받았지만, 두 손을 꼭 붙잡고 하는 그의 말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고 최동원은 몇번이고 말했다. "이 기자. 나 아프다고 하지마소. 그런 얘기 또 나오면 나 정말 피곤해. 괜찮아지고 있다니까…" 절절한 마지막 부탁이었다.

고 최동원 감독이 한화 코칭스태프로 야구계에 돌아온 2006년에 처음으로 야구장에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2007년 7월18일, 춘천 의암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군 올스타전 때 비로소 길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꼬박 4년이 흘렀다. 올해 7월22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레전드 리매치 경남고 VS 군산상고'의 경기를 앞두고 다시 최동원 감독과 만났다.

당시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경기 전 최동원은 경남고 라커룸에 앉아 외부, 특히 언론과의 접촉을 삼가고 있었다. 핼쑥해진 모습과 복수가 차오른 배 등 병색이 완연한 모습을 드러내기 싫은 탓이다. 어차피 경기가 시작되면 노출될 모습이라는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하던 그였다.

하지만, 기자는 갑자기 변해버린 그의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취재 욕심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마음속에 품어왔던 '야구영웅'의 쇠락한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고, 걱정됐다. 최 감독의 모습은 기자가 실제로 지켜본 말기암 환자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했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 만나기 힘들겠구나'. 직감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라커룸으로 들어가 인사를 했다. "어, 오랜만이오. 이리와 앉아요." 최 감독은 의외로 반갑게 기자를 맞아줬다.

20분 가까이 대화를 나눴다. 최동원 감독의 살아온 기억, 사는 이야기. 그리고 살아갈 계획.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여전했지만, 힘에 부친 모습을 감추진 못했다. 최 감독은 말했다. "요즘 강원도 산속에서 옛날 생각을 많이 해요. 내가 중학생 때부터 써온 야구일기도 들춰보고. 기억나는 일들은 다시 메모도 하고. 주욱 한번 정리해보고 있다고." 어쩐지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스스로를 정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일부러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감독님, 책 한번 쓰시죠. 자료정리 제가 도와드릴게요. 야구팬들이 정말 좋아하겠어요." 그러자 최 감독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허, 이 기자. 내랑 책쓰자는 사람 참 많았어요. 근데 내가 책 내려고 옛날 일들 정리하는 거 아니야. 내가 공부하는 거라고. 쭉 생각을 정리해보니까 야구를 보는 눈이 또 달라지더라고." 그는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현장복귀'에 대한 의지를 늘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병색이 완연해도 자존심만은 여전한 그의 모습앞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감독님, 얼른 회복하셔서 (현장)복귀 하셔야죠."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는 또렷이 말했다. "물론이죠. 돌아갈 겁니다. 계속 좋아지고 있어요. 다시 또 현장에 서야지. 내가 정말 롯데 감독은 꼭 한번…" 감정이 북받쳐오른 듯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꾹꾹 울음을 눌러담았다. 그리고는 "오늘 고마웠어요. 대신 나 아프다고 쓰지 좀 말아줘. 아프다는 소리 나오면 스포츠조선 구독 끊을거야"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것이 고 최동원 감독의 마지막 작별인사가 됐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