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수 벤자민 주키치가 LG를 깨웠다.
주키치는 8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로 등판했다. 7⅔이닝동안 7안타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1-2로 뒤진 상황에서 마운드에서 내려가 승리 투수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주키치의 역투는 승리의 발판이 됐다. 주키치가 내려간 뒤 LG는 4대2로 역전승을 거뒀고, 두산전 2패 이후 귀중한 1승을 얻었다.
그런데 이날 주키치는 선발 투수로서 구위 뿐만 아니라 허슬 플레이로 팀 승리를 이끌어냈다. 경기전 LG 분위기는 가라앉을대로 가라앉아 있었다. 두산에게 이틀 연속 패하면서 4강행은 더욱 멀어졌고, 6위 두산에겐 1.5게임차까지 추격을 허용해 5위 자리도 위협받는 상황이 됐다. 박종훈 감독을 비롯한 코치들은 말을 아꼈고, 선수들도 훈련 내내 침묵했다. 지난 8년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시즌 막판 어김없이 경험했던 패배의식이 또다시 선수단에 깔리는 분위기였다.
주키치가 이 같은 무거운 분위기를 깨트렸다.
주키치는 1회초 1사 1,2루의 위기에서 두산 4번 김동주와 맞대결했다. 김동주가 친 2구째 공은 3루 두산 덕아웃쪽으로 높이 솟아 올랐다. 포수 조인성도, 3루수 정성훈도 이 볼을 따라가지 않았다. 그런데 주키치는 마운드에서 전력으로 두산 덕아웃쪽으로 뛰어갔다. 2m에 가까운 장신의 주키치가 성큼성큼 전력으로 달려들자 부상을 걱정한 두산 선수들이 손으로 막아줬을 정도였다. 공은 그물을 넘어가는 파울이 됐지만 주키치의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에 박수가 쏟아졌다. 이후 주키치는 김동주를 2루수 땅볼로 유도해 병살 처리하면서 위기에서 벗어났다.
경기 후 주키치는 이 장면에 대해 "파울이 났는데 포수가 공을 시야에서 놓친 것 같았다. 마운드에서 보니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전력으로 뛰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키치의 이 플레이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외국인 선수는 말그대로 용병이다. 몸이 곧 돈이며 생명이다. 따라서 부상 위험이 있는 플레이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키치는 팀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4강 언저리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팀 동료들에게 근성 있는 플레이가 어떤 것인지 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메시지가 담긴 행동이었다.
이날 야구장엔 지난 6일 한국에 도착한 주키치의 가족들이 와서 경기를 지켜봤다. 특히 지난달 1일 태어난 첫 아들 라일리 앞에서 처음으로 공을 던지는 날이었다. 주키치는 "아들이 태어날 때 아내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했다. 3개월 가량 떨어져 있으면서 여러가지로 불안했는데 가족과 함께 있어서 마음이 너무 편하다"며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 했다.
주키치의 이날 허슬플레이는 LG 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잠실=신창범 기자 tigg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