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추석 때 어김없이 청룽(성룡) 영화가 한국 관객을 찾았다. 할리우드로 청룽을 떠나보낸 후부턴 한국 코미디 영화 '가문의 영광' 시리즈가 추석동안 우리의 곁을 지켰다.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제작하다 4편 '가문의 수난'으로 제작자에서 감독으로 변신, 데뷔한 정태원 신인 감독을 만났다. 영화 '할렐루야'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가문의 영광' '사랑' '포화 속으로', 드라마 '아이리스' '아테나:전쟁의 여신' 등의 제작자로 더 유명한 정태원 대표가 뒤늦게 감독으로 변신한 이유를 들었다.
"원래 제가 연출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당초에 다른 감독이 찍기로 했는데, 다른 걸 촬영하고 있었어요. 올 추석 개봉이 힘들겠더라고요. 그런데 추석 때 개봉을 시키고 싶었어요. '가문의 영광' 시리즈는 계속해서 추석에 개봉을 했거든요. 자꾸 시간은 가고, 두 달 안에 촬영과 후반작업까지 끝내야 했죠. 무리한 스케줄이었습니다."
시간은 없고, 마땅한 연출자도 없는 상황에서 정태원 대표에게 메가폰을 쥐어준 건 시리즈를 함께 해 온 배우들이었다. 그동안 제작자로서 감독의 등 뒤에 서 있었지만, 교감이 두터운 신현준 탁재훈이 정태원 대표를 앞으로 끌어냈다.
"배우들이 저한테 아무렇지 않게 '형이 직접해'라고 하더군요. 저를 시험대에 올리고 싶은 마음, 그동안 감독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했는데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지도 궁금했죠. 전에 이병헌이 '아이리스'로 상을 수상한 뒤 소감에서 '무모함이 장점이자 단점인 저에게 감사한다'라고 했는데, 진짜 그런 무모함으로 시작을 한거죠."
정태원 감독은 '가문의 수난'을 스스로 연출자와 제작자의 중간 지점에서 만들었다고 밝혔다. 영화 코드 역시 100%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예술영화가 아닌 배우 중심의 코미디영화이기 때문에 쉽게 연출자로 변신이 가능했다. 물론 정태원 감독의 목표 역시 지극히 순수하고 단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추석 때 한국관객을 즐겁게 만들자. 요즘 쉽고 편한 코미디가 없다. 본능적으로 단순하게 웃고 남녀노소 학벌 관계없이 웃는 정통 코미디를 만들자'라는 의무감이 있었습니다."
연출로서 육체적으론 훨씬 더 힘들었지만, 제작 때와는 또 다른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낀 정태원 감독은 앞으로도 제작을 하면서 코미디 영화 연출을 병행할 계획이다.박종권 기자 jkp@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