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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백업포수 심광호의 '꿈'이 담긴 핑크색 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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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꿈이 있으니까.'

7일 잠실구장. 두산과의 경기에 앞서 LG의 훈련이 한창일 때 덕아웃에서 눈에 띄는 미트가 있었다. 보통의 글러브들과는 다른 강렬한 핑크 색상의 미트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황금색 실로 자수까지 들어가있었다. 미트의 주인공이 궁금했다. 이때 훈련을 마친 LG 백업포수 심광호가 들어왔다. 그는 "제 미트입니다. 새로 장만했습니다"라며 미소지었다.

평소 말보단 행동이 앞서는 그다. 묵묵히 움직이는 그에게 핑크색은 조금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심광호는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그것보다는 꿈이 담긴 미트"라며 자수를 가리켰다. 보통 선수들은 글러브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다. 아니면 이니셜, 애칭 등을 적어넣곤 한다. 그런데 심광호의 미트에 새겨진 '난 꿈이 있으니까'라는 문구는 생소함을 넘어 신선하게 다가왔다.

꿈. 무슨 꿈인지 그에게 물었다. 심광호는 "어떤 꿈일까요?"라고 미소와 함께 반문했다. 잠시 뒤 그는 "가장 큰 꿈은 역시 팀이 4강에 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답변이지만, 그의 표정에서 진지함이 느껴졌다.

심광호에게 포스트시즌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는 지난 2006년 '가을 사나이'가 될 뻔했다. 한화 유니폼을 입고 뛰던 당시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3차전. 1-3으로 패색이 짙은 8회말 대타로 나서 삼성 마무리투수 오승환을 상대로 동점 투런포를 쏘아올렸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2008년에는 삼성에서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경험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삼성에서 방출된 뒤 갈 곳 없는 자신을 받아준 LG다. 절치부심한 결과 1군에서 백업포수로 뛰게 됐다. 은퇴의 기로에 섰던 선수에게 LG라는 팀이 새 인생을 살게 해준 것. 비록 LG에서 뛴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보다 4강에 대한 간절함은 더욱 커보였다.

심광호는 8월 말 조인성이 2군으로 내려간 뒤 주전 마스크를 쓰면서 팀의 상승세를 이끌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대전 한화전부터 3일 잠실 롯데전까지 8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특유의 온화함으로 투수를 편안하게 만들어 안정적으로 리드했다는 평. 하지만 3일 경기서 1회초 결정적인 실책을 저지르고 교체되는 수모를 겪었다. 롯데 김주찬의 주루 미스 때 1루수에게 던진 송구가 키를 넘어 우측 펜스까지 간 것. 공교롭게도 그날 이후 포수 마스크는 다시 조인성에게 넘어갔다.

심광호에게 조심스레 당시 이야기를 꺼내자 처음엔 "무슨 일 있었어요?"라며 모르는 척 했다. 하지만 이내 "다 잊었다. 아니, 잊으려고 애쓸 수 밖에 없다. 분명 내 잘못이다"라며 "다시 기회가 온다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굳은 의지를 보였다.

심광호의 꿈. 짧은 대화 후 그의 다른 꿈이 느껴졌다. 두번째 꿈은 실수를 훌훌 털어내고, 다시 홈플레이트에 서는 것이 아닐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