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A대표팀(57)이 그동안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포스트 박지성' 역할을 누구에게 맡길지였다. 1월 카타르아시안컵을 끝으로 박지성(30·맨유)이 A대표팀을 떠난 뒤부터 여러 선수를 시험했지만,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머리만 더욱 복잡해졌다.
그런데 최근 이 답을 찾아가고 있다. 박지성으로부터 주장 완장을 물려 받은 박주영(26·아스널)이 '포스트 박지성'에 가까워지는 모습이다. 박지성이 보여줬던 기량과 리더십 두 측면 모두에 가깝게 접근하고 있다.
2일 레바논전에서 종전의 중앙 대신 왼쪽 측면으로 이동시킨 깜짝 기용이 적중했다. 이적 문제로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한 박주영에게 원톱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내린 조 감독의 배려가 오히려 맞아 떨어졌다. 박주영은 해트트릭으로 화답했다.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공격 형태나 패스 연결 및 뒷공간으로 파고드는 움직임 모두 합격점을 줄 만 했다. 골잡이의 타고난 감각에 센스까지 더해진 모습으로 박지성이 보여줬던 폭발력을 갖춰가고 있다.
주장 완장 뿐만 아니라 기량적인 측면에서도 박지성을 닮아가고 있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주장이 된 뒤부터 부쩍 책임감이 늘었던 박주영은 아스널 이적 후 더욱 성숙한 모습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명문팀에서 뛴다는 자부심과 책임감, 여유가 A대표팀에서의 긍정적인 리더십을 만들어 냈다. 한-일전 뒤 잔뜩 가라앉았던 팀 분위기를 빠르게 수습해 레바논전 대승에 일조했다.
포지션적인 부분에서는 박주영이 '포스트 박지성'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아스널에서 부여받게 될 포지션과 임무에 따라 자연스럽게 플레이 스타일도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A대표팀에서도 또 다른 측면 요원이 발굴된다면 본래의 자리인 중앙으로 이동할 여지가 남아 있다.
하지만, 그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측면에서의 활약도 가능성이 확인된데다 원톱 자리에 포진한 지동원(20·선덜랜드)의 성장세에 따라 왼쪽 측면 자리에 고정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조 감독의 '포스트 박지성'에 대한 고민은 해소될 수 있다. 리더십 부분도 남은 3차예선과 최종예선을 통해 검증을 더 거쳐야 하지만, 현재까지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 시간이 지나면 박지성의 '맨유 리더십'과 견줄 만한 '아스널 리더십'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쿠웨이트시티=박상경 기자 kazu1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