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자축구가 런던올림픽 최종예선전에서 북한에 2대3으로 분패하며 눈물을 삼킨 5일, 여민지(18·함안대산고)가 부상에서 돌아왔다. 복귀전에서 2골을 몰아치며 펄펄 날았다. 불의의 무릎 부상만 아니었더라면 3월 키프로스컵 대회 때처럼 언니들을 따라나섰을 그녀다. 런던행 난항 소식이 누구보다 속상할 터, '지소연-여민지' 환상의 투톱을 보지 못해 아쉽다고 하자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저도 아쉬워요"라는 느릿한 한마디가 돌아왔다.
여민지가 5일 화천에서 열린 추계여자축구연맹전 준결승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렀다. 강릉 강일여고와의 준결승전 후반 교체출전해 순식간에 2골을 성공시켰다. 코너킥에 이은 헤딩골, 트레이드 마크인 개인기 돌파에 이은 결승골까지 완벽한 '부활'이었다. 0-2 승부를 3대2로 뒤집으며 이름값을 증명했다. 고3 졸업반으로서 모교 함안대산고에 결승행의 감격을 선물했다. 지난 4월 여왕기여자축구대회에서 연이틀 해트트릭을 쏘아올린 직후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쓰러진 지 정확히 5개월만이었다.
배성길 함안대산고 감독에 따르면 이날 여민지의 복귀전은 예정에 없던 일이다. 10월 아시아축구연맹(AFC) 19세 이하 여자축구선수권을 앞두고 가능한 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최덕주 감독의 요청이 있었다. 성적보다 선수보호가 우선이었다. 예선전부터 8강전까지 여민지의 이름은 선수명단에도 오르지 않았다. 준결승전을 앞두고 여민지의 몸 상태가 70~80%까지 올라왔다. 10분이라도 기용해 경기감각을 끌어올리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에서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강일여고에 0대2로 지고 있던 전반전, 벤치에 앉은 여민지와 눈이 마주쳤다. 경남 명서초등학교 시절 여민지를 키워낸 배 감독은 단번에 간절한 눈빛을 읽었다. 부담스러운 결정이었지만 애제자의 능력을 믿었다. 여민지는 승부욕이 발동하더라고 했다. "사람이니까 욕심이 나잖아요. 지고 있으니 몸이 근질근질하고, 정말 뛰고 싶더라고요."
그라운드 복귀의 꿈은 그렇게 갑작스레 이뤄졌다. "5개월 쉬다가 볼을 처음 잡았는데 시야가 1~2m밖에 안돼 당황했다"며 복귀 순간을 떠올렸다. "볼 터치를 하다보니 서서히 시야가 확보되더라. 여유있게 하려고 노력했다"며 웃었다. 배 감독은 "통통 튀었다"는 한마디로 여민지의 복귀전을 평가했다. 특유의 탄력과 감각, 킬러 본능은 그대로였다. 오른무릎 부상을 털고 돌아온 여왕기대회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더니, 이번에도 어김없이 복귀전 멀티골로 기대에 보답했다. 어린나이에 부상과 재활, 좌절을 수없이 경험하면서도 언제나 오뚝이처럼 재기하는 제자가 기특할 따름이다. "민지는 의지가 대단히 강하다. 그냥 구경만 하라고 해도 곁눈질로 보면 늘 혼자 개인훈련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돌아온 여민지는 이미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오랜만에 뛰니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대표팀에 들어가기 전에 체력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다. 모교를 결승에 올리고 나니 이제 슬슬 대표팀 감독님 볼 일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최덕주 감독님이 뛰지 말라고 했는데, 아… 이제 혼날 일만 남았어요"며 웃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