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는 마법을 부린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구부러졌다가도 어느새 원상태로 쭉 펴지며 선수들을 5m 이상 솟구치게 한다. 하지만 너무 심하면 이런 고탄성의 장대도 부러진다.
실제로 29일 남자 장대높이뛰기 결선에서 2명의 장대가 두 동강났다. 국제대회에서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상황이 두 번이나 연출된 것이다. 얀 쿠들리카(체코)와 드미트리 스타로두브세프(러시아)의 장대가 도약하던 중 부러졌다.
하마터면 인명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부러져 끝이 거칠게 변한 장대 끝이 쿠들리카의 옆구리를 찔렀다. 천만다행이었다. 촬과상에 그쳤다.
장대가 부러지면서 단면도 드러났다. 나무가 아니라 플라스틱 재질처럼 보였다. 장대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세기 초에는 탄력이 좋은 대나무 장대를 쓰다가 이후 알루미늄과 유리섬유 제품이 도입됐다. 1980년대부터는 탄소 코팅 처리한 특수 유리섬유 재질의 장대가 쓰인다. 유리 섬유 자체가 탄성이 좋고 질기기 때문이다.
장대높이뛰기에 사용하는 장대는 재질이나 두께, 길이에 대한 제한 규정이 없다. 선수들은 자신에게 맞는 장대를 찾아 사용하면 된다는 뜻이다. 선수들은 한 대회에 보통 4~5개의 장대를 준비한다.
그런데 이처럼 고탄성의 장대가 왜 부러진 것일까. 추운 겨울철도 아닌 30℃에 가까운 여름철에 부러지는 일은 드물다. 원인은 선수들이 장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범철 장대높이뛰기 대표팀 코치는 "대개 선수들이 잘못된 기술을 썼을 때 장대가 부러진다. 장대박스에 장대를 꽂은 뒤 위로 솟구쳐야 하는데, 위쪽가 아닌 앞쪽으로 힘을 주다보면 장대가 너무 많이 구부러져 결국 부러진다. 장대를 잡는 그립을 위로 향하지 않고 아래쪽을 향해도 휘어짐이 심해져 부러진다"고 설명했다.
장대는 얼마 정도할까. 정 코치는 "미국의 P사와 U사의 제품이 장대계의 양대산맥이다. 국내외 선수들 대부분이 두 회사 제품을 쓴다"며 "수입가는 남자 장대의 경우 600~700달러(약 64~75만원)선, 여자 장대는 400달러 정도다. 부러지지만 않으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고 했다.
쿠들리카와 스타로두브세프는 힘을 잘못 썼다가 70만원 가량을 날린 셈이다. 깜짝 놀란 충격 탓인지 성적도 각각 9위와 12위로 좋지 않았다.
대구=국영호 기자 iam90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