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를 제압하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선 파비아나 무레르(브라질)는 2008년 여름 베이징을 잊지 못한다. 장대를 잡을 때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당한 설움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여자장대높이뛰기 결선에서 황당한 일을 당했다. 자신이 경기 전 대회 조직위에 맡겨둔 장대를 통째로 분실한 것이다. 대개 장대높이뛰기 선수들은 한 대회에 참가하면서 5~6개의 장대를 케이스에 담아서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손에 익은 중요한 장비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한마디로 큰일난 것이다. 황당한 뮤레르는 경기장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찾았다. 그 안타까운 상황을 보다못한 진행요원들까지 장대를 함께 찾았다. 그 때문에 경기가 30분이나 중단됐다. 하지만 결국 무레르는 자신의 장대가 아닌 대회 조직위가 준비한 예비 장대를 잡아야 했다. 무레르와 브라질 코치는 장비를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 조직위를 맹비난했다. 무레르는 낯선 장대를 사용해 4m45의 저조한 기록으로 10위에 그쳤다. 당시 그는 분한 마음으로 이신바예바가 당시 세계기록(5m5)을 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랬던 무레르가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올림픽과 맞먹는 세계육상선수권에서 우승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무레르는 큰 대회에 약한 징크스를 대구에서 말끔히 털어냈다. 베이징올림픽 1년 후 나간 베를린세계선수권에서도 자신의 실력에 훨씬 못미치는 4m55에 그치며 5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올해 나이 30세를 맞은 노장의 투혼은 마침내 세계정상이라는 열매로 이어졌다.
이날 무레르는 4m55부터 4m65, 4m75 높이의 바를 차례로 넘었고, 4m80에서 한 차례 실패하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침착하게 두 번째 시기에서 4m80을 성공시켰다. 바로 4m85를 1차에서 타넘어 1위를 굳혔다. 이신바예바가 4m70에서 1차 시기 실패 이후 바로 건너 뛰어 4m75, 4m80까지 바의 높이를 마구 올리는 도박을 한 것과는 경기에 임하는 방식이 달랐다.
무레르는 지난해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세계실내육상선수권대회에서 첫 세계 무대 챔피언이 됐다. 당시에도 이신바예바(4위)를 물리쳤다. 무레르도 이신바예바 처럼 체조 선수 출신이다. 특히 어릴 때는 이단평행봉을 잘 했다. 무레르의 공중 동작이 유연한 이유이다. 대구=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