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그에 의해 달궈졌다. 하지만 기록은 그의 인기를 받쳐주지 못했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최고 미녀스타의 메이저대회(세계선수권, 올림픽) 데뷔전이 아쉬움 속에 끝났다. 세계 최고를 향한 도전은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트랙위의 바비인형' 다르야 클리시나(20·러시아)가 여자 멀리뛰기 결선에서 6m50을 뛰며 12명 가운데 7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금메달은 6m82를 뛴 올시즌 랭킹 1위 브리트니 리즈(25·미국)가 차지했다. 클리시나는 리즈가 성조기로 몸을 감싼 채 대구스타디움을 돌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만 봤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쓸쓸히 발걸음을 옮겼다. 기분이 상한 듯 인터뷰도 정중히 거절했다. 이번 대회 최고의 미녀스타로 떠오른 클리시나의 아쉬운 퇴장이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미녀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줬다.
클리시나의 달구벌 첫 출연은 단연 화제였다. 27일 여자 멀리뛰기 예선전부터 이상 분위기가 감지됐다. '미녀 선수로 유명하다'는 장내 아나운서의 설명이 이어지자 관중들은 일시에 주목했다. 전광판 화면에 그 얼굴이 크게 비치자 깜짝 놀랐다. "선수야? 모델이야?"라는 호기심 가득한 수근거림이 관중석을 뒤덮었다. 28일 열린 결선에서도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연습 중 주변에 팬들이 몰려 들어 연신 셔터를 터뜨렸다. 100m 결선을 기다리던 팬들도 어느새 멀리뛰기 경기장을 주목했다. "자주 미디어에 노출되서라도 육상 팬들의 관심을 멀리뛰기로 끌고 싶다"던 바람이 이뤄졌다. 육상계 최고의 미녀스타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29·러시아)를 초월하는 새로운 여신의 탄생이다. 경북 김천에서 온 박봉진씨(26)는 "사람들이 하도 예쁘다고 해서 직접 구경왔는데 신비롭다. 운동선수여서 피부 탄력이 정말 좋다. 이신바예바를 좋아했는데 훨씬 더 이쁜거 같다"며 웃었다.
'바비인형'으로 불리는 클리시나는 1m80, 57kg의 완벽 몸매 소유자다. 시선을 확 끄는 긴다리와 운동신경은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유산이다. 부모가 아마추어 육상선수 출신이다보니 몸에는 육상인의 피가 흐른다. 배구선수로 활약하던 13세에 부모의 권유로 단거리 스프린터로 전향했다가 뛰어난 도약력을 살리기 위해 멀리뛰기에만 전념하고 있다. 2007년 세계청소년육상선수권에서 6m47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며 두각을 나타내더니 2011년 3월 유럽실내육상선수권에서는 우승도 차지했다. 지난 7월 개인 최고기록인 7m05를 뛰어 넘으며 올시즌 랭킹 2위에 올랐다. 러시아에서는 이미 미모와 실력을 갖춘 육상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인기 덕분에 미디어 노출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남성 잡지의 표지 모델로 나서 수위 높은 노출을 선보이며 전세계 팬들의 눈을 사로 잡았다. 스포츠음료업체인 레드불, 스포츠용품업체인 나이키, 마케팅업체 IMG와 손을 잡았다.
하지만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보완해야 할 점도 많다. 러시아 국영 알아이에이 노보스티(RIA NOVOSTI) 통신 안드레이 시모네코 기자는 "러시아에서 클리시나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마리아 샤라포바(테니스)를 이을 차세대 미녀 주자다"라고 엄지를 치켜 세우면서도 "올시즌 대회 출전이 잦아 100% 컨디션이 아니었지만 이번 성적은 저조했다. 다른 선수와는 달리 남자선수의 기술을 갖췄다. 항상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 다른 선수들과 어울리면서 경기 중 여유를 가져야 본인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육상계가 새로운 아이콘 클리시나를 주목할 날이 멀지 않았다. 그 가능성은 이미 대구에서 증명됐다.
대구=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