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구에 세계신기록을 수립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세계 최고 타이틀을 방어하기 위해 왔다."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는 타이틀 수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같은 주장을 펼쳤다. 기록보다는 순위가 우선이었다. 2011년은 볼트에게 '컴백시즌'이었다. 지난해 허리와 아킬레스를 다쳤던 볼트에게 올해는 다시 몸을 끌어올리는 시간이었다. 올해 최고 기록은 9초88밖에 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계신기록인 9초58에 0.3초나 모자랐다. 올 시즌 6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때문에 볼트는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을 위해 16일 입국한 순간부터 줄곧 기록보다는 순위에 중점을 둔다고 얘기해왔다.
▶볼트, 파월 출전 포기로 싱겁게 우승하나
결과적으로 볼트는 자신의 약속을 아주 손쉽게 지킬 수 있게 됐다. 강력한 경쟁자 아사파 파월(29·자메이카)덕택이었다.
사건은 25일 대구 대명동 대덕문화전당에서 벌어졌다. 자메이카 육상대표팀의 공식 기자회견이 있었다. 토크쇼 형태로 신선했다. 하워드 애리스 자메이카 육상경기연맹 회장부터 베로니카 켐벨 브라운(29), 셸리 앤 프레이저(25) 등 여자 선수들이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펼쳤다. 행사장에 모인 400여 내외신 기자들은 선수들의 단어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받아적었다.
그런데 남자 선수들이 나오자 장내가 웅성거렸다. 있어야할 선수가 없었다. 당초 계획은 파월이 네스타 카터(24), 요한 블레이크(22) 등 스프린터들과 함께 나설 예정이었다. 파월은 없었다. 대신 마이클 프레이터(29)가 나왔다. 프레이터는 "파월이 100m에 출전하지 않기로 해 내가 이 자리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파월의 상태에 대해 질문을 쇄도했다. 자메이카 대표팀의 그레이스 잭슨 단장은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지금 팀 내부에서 회의 중이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BBC 등 외신들은 파월의 에이전트인 폴 도일(영국)의 인터뷰를 인용해 파월의 100m 출전 포기를 확인했다. 도일은 '파월이 100m출전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파월은 최근 사타구니 부상으로 영국 크리스탈팰리스 다이아몬드리그 출전을 포기했었다. 결국 부상을 극복하지 못했다.
▶또 다시 불운에 운 영원한 2인자
이번 대회 100m 출전을 포기한 파월. 또 다시 불운에 울었다. 영원한 2인자 타이틀을 벗는데 실패했다. 파월은 2005년 9초77의 세계기록을 찍으며 단거리 황제에 올랐다. 하지만 메이저대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7년 오사카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동메달에 그쳤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볼트가 나타나 파월의 세계기록을 갈아치우며 우승을 차지했다. 파월은 5위였다. 2009년 베를린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볼트에 밀려 동메달에 그쳤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파월은 그 어느때보다 철저하게 준비했다. 올해 9초78을 뛰며 시즌 1위를 기록한 파월은 볼트보다 늦은 22일 입국했다. 끝까지 개인훈련에 매진했다. 21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는 '(대회 전까지) 카메라 플래시는 볼트에게 터트려달라. 난 호흡을 고르고 내 자신에게 집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파월은 400m 계주에만 나설 전망이다.
▶볼트, 우리도 있다
파월의 불참으로 남자 100m는 김빠진 경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볼트의 또 다른 경쟁자 타이슨 게이(29·미국)도 엉덩이 부상으로 불참한다. 단거리는 근육을 폭발적으로 써야하기 때문에 선수들의 부상이 많다. 볼트도 지난해 허리와 아킬레스건을 다쳐 고생했다.
볼트의 독주를 막을 복병들도 있다. 볼트의 동료 블레이크가 선봉에 서있다. 블레이크는 올시즌 9초95로 주춤하지만 젊은 패기가 강점이다. 파월의 대체자로 나서는 프레이터도 올 시즌 9초88를 기록했다. '백색탄환' 크리스토프 르메트르(21·프랑스)도 복병 가운데 한 명이다. 대구=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