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이하 한국시각) 높이뛰기 여왕 브랑카 블라시치(28·크로아티아)에게 두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왼 다리 반막모양근(허벅지 뒤쪽)이 부분 파열됐다. 27일 개막하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불과 2주 앞둔 시점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도약 선수에게 치명적인 햄스트링 부상이었다.
낙담한 블라시치는 19일 출전 여부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했다. 출전이 좌절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의외의 결정을 내렸다.
"사실 몇 시간 전까지만해도 대구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대구에 가고 싶다. 내 높이뛰기 인생이 끝나고 돌아봤을 때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9월 3일 높이뛰기 결선을 텔레비전으로 보고 싶지 않다. 세 차례 더 훈련한 뒤 근육에 크게 문제가 없다면 한국에 갈 생각이다."
그러면서 그는 "결선 라운드에 진출하는 게 목표로, 경쟁자들과 겨룰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1%의 가능성이 있다면 도전하겠다는 말이었다.
그의 불굴의 의지가 다시 한번 샘솟고 있다. 이미 한 차례 벼랑 끝에 섰던 블라시치라 가능한 일이다.
첫번째 시련은 2005년 찾아왔다. 당시 무기력증에 빠진 그는 갑상선에 이상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재기할 수 있을지, 또 그 기간이 얼마나 길지 알 수 없었다. 극적으로 회복했지만 수술 여파로 저조한 기록을 내서 그해 열린 헬싱키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노메달에 이은 위기였다. 유망주에 머무느냐, 꽃망울을 피우느냐가 걸린 중요한 시기였다.
여왕는 위기를 넘기고 탄생했다. 건강 악화를 이겨낸 블라시치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강해졌다. 2006년 세계실내선수권대회 2위로 부활을 알렸다. 당시 "1위를 하고 싶었지만 1년 전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때를 떠올리면 2위도 정말 대단한 일이다"고 했던 블라시치는 이듬해인 2007년 오사카세계선수권대회에서 마침내 세계 정상에 섰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줄곧 세계 챔피언이다. 2009년 베를린세계선수권대회와 지난해 유럽선수권대회를 연거푸 휩쓸었다. 시련을 겪고 나서 단단해졌다.
1m93-75㎏로 높이뛰기 선수로서 완벽한 신체조건을 갖춘 블라시치의 목표는 두 가지다.
먼저 세계 기록 경신. 블라시치의 개인 최고 기록은 2009년 작성한 2m8. 24년 전인 1987년 로마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운 스테프카 코스타디노바(불가리아)의 기록에 불과 1㎝ 모자란 기록이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부상해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지만 여제가 기적을 일으킬지 모르는 일이다.
해트트릭 달성도 노린다. 지난해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그는 올해 세계선수권과 내년 런던올림픽까지 3개 빅이벤트 우승에 도전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아쉽게 은메달에 그쳤다.
블라시치는 지난 7월 올시즌 세계 최고 기록인 2m7을 넘은 아나 치체로바(29·러시아)와 우승을 다툰다.
국영호 기자 iam90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