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의 '악바리' 계보 하면 박정태 2군 감독, 공필성 1군 수비코치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지금 현역 선수 중 이들의 대를 이을 만한 선수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나오는 이름 손아섭. 출중한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라운드 위에서 포기할 줄 모르는 근성의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킨다. 하지만 손아섭의 매력은 이 뿐 아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그라운드를 벗어나면 한 없이 밝고 유쾌하게 변신한다. 수려한 말솜씨와 팬서비스로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그동안 프로야구판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별종'이 나타난 것이다.
손아섭의 신인시절 일화다. 2007년 부산고를 졸업하고 2차 4라운드 29순위로 롯데에 입단했다. 당시 이름은 개명 전 이름인 손광민. 드래프트 순위가 낮은 만큼 팀 내에서 거는 기대는 극히 미미했고, 그 결과 전지훈련 명단에서 빠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손아섭은 당시를 떠올리며 "고졸 신인이었지만 정말 자존심이 상했어요. 그래서 남들보다 더욱 뼈를 깎는 노력을 했습니다"라고 했다. 전지훈련에서 빠진 선수들은 당시 2군 연습장이었던 마산구장 훈련을 위해 오전 8시 사직구장에 모였다. 하지만 손아섭은 무조건 7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시작 전까지 혼자 티배팅을 했다. 함께 입단한 동기 투수에게 배팅볼을 던져달라고 조르기도 일쑤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괜히 있을까. 이런 손아섭의 근성은 당시 1군을 이끌던 강병철 감독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손아섭은 운좋게 시범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다. 손아섭이 기억하는 당시 시범경기 성적은 대타로 나와 16타수 1안타. 하지만 손아섭은 "정말 타석에 나가면 자신있게 스윙했어요. 강 감독님께서 당시 '어린 녀석이 당차네'라고 생각하시며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개막 엔트리에까지 들어가는 영광을 안았습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쁨은 거기까지였다. 시즌 전 너무 무리하게 연습을 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손목에 통증이 왔다. 하지만 어렵게 잡은 기회를 꼭 잡고 싶었다. 방망이를 쥐기에도 힘든 통증이 밀려왔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흘러가던 2007년 시즌 초반, 부산 LG와의 경기에서 9회말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투수는 당시 LG의 마무리였던 우규민(현 경찰청). 초구 파울을 쳤는데 손목이 찌릿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2구째 공이 또 가운데로 들어오자 또다시 방망이를 휘둘렀다. 여기서 문제가 터졌다. 방망이에 공이 맞는 순간, 손목 뼈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골절돼 버린 것이다. 그는 "뼈가 '우두둑'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렸어요"라며 당시의 충격을 설명했다.
당시 육체적인 고통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렇게 힘들게 잡은 1군에서의 기회가 단 4경기 만을 뛴 채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을 더욱 짓눌렀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고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를 위해 재활에 몰두했다. 이런 근성이 지금의 '롯데 3번타자' 손아섭을 만들어낸 원천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화 뿐이라면 손아섭이 근성으로만 뭉쳐진 '야구기계'로만 비쳐질 수 있다. 손아섭은 야구 선수이기 이전에 밝고 쾌할한 청년이다. '하늘'같은 감독님이라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양승호 감독에게 늘 살가운 모습을 보이려 노력한다. 양 감독도 그런 애교에 너털웃음을 짓는다. 전날 경기에서 보살 1개를 추가하면 양 감독을 바라보며 시즌 보살 개수를 손가락으로 펼쳐보이며 웃는 식이다. 아직 후배 축에 속하는 만큼 덕아웃에서 파이팅도 가장 크게 외친다.
팬서비스를 위해서도 노력한다. 항상 웃으며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어떤 등장음악을 선택하면 팬들이 즐거워할지 고민하는 신세대 청년이다. 취재진의 질문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스스로 "홍성흔 선배를 따라잡아야죠"라며 너털 웃음을 짓는다. 최고 인기팀 롯데의 프로선수로서,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싶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는 손아섭이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