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이만수 감독대행이 드디어 1군 감독석에 앉았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씁쓸한 밤이 돼버렸다.
18일 인천 삼성전은 이만수 대행에겐 '1군 데뷔전'이었다. 미국에서 돌아와 SK에 몸담은 뒤 1군 수석코치와 2군 감독을 맡았지만 1군 감독석에 앉아 경기를 총괄하는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당연히 영광된 날이었다. 시작은 그랬다.
▶하루 두경기를 치르다
이날 이 대행은 본래 대전에서 2군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오전 11시쯤 시작된 경기였는데 4회말 즈음해서 이 대행은 SK 신영철 사장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감독대행을 맡게 됐으니 인천으로 올라오라는 내용. 경기를 마치자마자 이 대행은 택시편으로 부랴부랴 인천으로 향했다. 2군 경기에선 SK가 2대0으로 한화를 이겼다.
문학구장에 도착한 뒤 잠시 선수단을 만난 이 대행은 오후 4시30분부터 대회의실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했다. 그후엔 경기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코칭스태프 개편을 단행하느라 숨가쁜 오후를 보냈다.
1군 데뷔전에선 삼성에게 0대2로 패했다. 타선이 힘을 쓰지 못해 패했지만, 전체적으로 무리가 없는 경기였다. 워낙 조용한 흐름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이만수 대행이 첫 경기부터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만한 상황이 못 됐다.
▶욕설까지 내뱉은 일부 몰지각 관중
경기 전부터 문학구장 외야석에는 SK 프런트를 비난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4회에 삼성 채태인의 우월 홈런이 관중석을 향해 날아가자, 홈팀 SK팬들이 좋아하는 광경이 보이기도 했다. 모두 김성근 감독을 해고한 데 대한 반감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해됐다.
경기중에만 그라운드 관중 난입이 세차례나 있었다. 보안요원을 피해 홈까지 전력질주로 내달린 팬도 있었다. 야구장 안에 수시로 생수병을 포함한 오물이 투척됐다. 관중이 난입하거나 경기 흐름이 끊길 때마다 관중석에선 "김성근"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경기가 끝난 직후 오물 투척은 극에 달했다. 이만수 대행은 덕아웃 안에서 인터뷰중이었다. 그때였다. 술에 취한 것으로 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관중 한명이 그라운드에 들어왔다가 보안요원에게 끌려나갔다. 이 과정에서 이만수 대행을 쳐다보며 "야, 이만수, 이 OOO야!"라고 소리쳤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몰지각한 욕설이었다. 이만수 대행도 그 욕설을 들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착잡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보안요원들은 "입을 막어!" 하면서 민망한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덕아웃 인터뷰를 길게 진행하기도 어려워졌다.
▶데뷔전의 축복은 없었다
경기장에 조명이 완전히 꺼진 뒤에도 홈팬들은 귀가하지 않고 관중석에서 시위를 했다. 급기야 밤 9시13분쯤 수백명의 관중이 펜스를 넘어 내려온 뒤 마운드 위에 모여 항의 시위를 이어갔다. 일부 팬들은 불을 피워 SK 유니폼 등을 태우기도 했다. 일부는 SK 라커룸으로 향하는 1루 덕아웃 근처로 몰려가 함성을 외치기도 했다.
잠시후에는 3루쪽 덕아웃에서 누군가 훈련용 공이 담긴 커다란 박스를 꺼내 뒤엎었다. 이번엔 팬들이 공을 줍기 위해 그쪽으로 몰려들었다.
이만수 감독대행에겐 영광스런 날이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현실은 악몽이 돼버렸다. 프로야구 역사상 없었던 심각한 감독 교체 항의 시위였다.
이만수 대행은 "2군 경기와 크게 다른 점은 느끼지 못했다. 투수들이 잘 던졌다. 타자들이 조금 더 올라오면, 조만간 극복해서 이전부터 팀이 갖고 있던 기량을 정상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들이 5년간 김성근 감독님과 함께 했는데, 갑자기 감독님이 사퇴하셔서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조만간 잘 해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인천=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