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과 같은 멀티 포지션 능력을 소화할 선수가 필요한데…."
맨유 박지성(30)이 배구판에서도 언급됐다. 김형실 여자배구대표팀 감독(60)의 입에서 나왔다. 한국 대표팀에도 박지성처럼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 육성이 시급하다는 것이 얘기의 골자였다.
박지성은 소속팀이나 은퇴한 대표팀에서 2~3가지 포지션을 소화했다. 주 포지션인 왼쪽 측면 공격수로 나서 팀 공격이 풀리지 않을 때는 중앙으로 이동했다. 대표팀에선 '박지성 시프트', 맨유에선 '센트럴 팍'이란 별명을 얻었다. 또 스트라이커들이 부상으로 쓰러질 땐 최전방에서도 섰다. 때로는 측면 수비수로도 기용됐다. 한 마디로 '올라운드 플레이어'의 표본이었다.
17일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내셔널 훈련장에서 첫 훈련을 마친 뒤 김 감독은 한국이 더 강해지기 위해선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많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부분의 일본 선수들은 모든 포지션에서 뛸 수 있다. 요즘 세계 배구계의 추세도 한 선수가 한 포지션에 국한되지 않는다. 센터가 세터로도 변신할 수 있을 정도로 다재다능하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13일 세계랭킹 8위 쿠바에게 3대2로 승리하긴 했지만 '투 세터 시스템'에 고전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주장 유시데이와 리디아가 전위에서 번갈아가며 세터를 봐 고생했다. 이긴 것이 기적일 정도다"고 회상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선수들의 의식 구조가 폐쇄적이다. 레프트 공격수를 라이트에 세우면 두려움을 먼저 갖는단다. 김 감독은 "초·중·고교 때부터 멀티 포지션 소화라는 중장기적인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만 선수들이 막연한 두려움에 먼저 배우려는 문을 닫아버린다"고 했다.
현재 대표팀에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꼽히는 선수는 김연경(터키 페네르바체)과 배유나(GS칼텍스) 정도다. 김연경은 좌우 공격은 물론 센터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 센터인 배유나도 측면 공격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들도 완벽하진 않다. 토스가 부족하다. 김 감독은 "앞으로 더 많은 '배구계의 박지성' 육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도쿄=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