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조광래 A대표팀 감독의 전술을 '만화 축구'라고 했다. 선수들의 입에 나온 얘기다. 짧은 시간에 그가 그려놓은 다양한 전술을 소화하기 힘들었다.
6월 세르비아, 가나와의 A매치 2연전이 전환점이 되는 듯 했다. 유럽과 아프리카의 강호를 각각 2대1로 제압했다. '조광래 축구'도 팬들의 신뢰를 받았다.
조 감독은 거칠 것이 없었다. 자신감도 하늘을 찔렀다. 거기에서 오판이 시작됐다. 10일 열린 한-일전에서 그는 그동안 이뤄 놓은 모든 것을 허공으로 날렸다. 굴욕적인 0대3 완패는 한-일전 참패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조 감독은 자신만의 틀 안에 모든 것을 가두었다. 지나친 고집이 화를 불렀다. 철학도, 소통도 없었다.
▶왜 해외파 차출했나
한-일전을 앞두고 노선부터 혼란스러웠다. 당초 2011~2012시즌 유럽 리그 개막에 맞춰 한-일전에서 유럽파를 제외하려고 했다. 옳은 생각이었다. 한-일전의 중요성은 잘 알지만 욕심을 낼 필요가 없었다. K-리거와 J-리거 등에게 충분한 기회를 줄 수 있었다. 9월 시작되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에 대비한 마지막 테스트로 활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알베르토 자케로니 일본 감독이 유럽파 총동원령을 내리자 생각이 바뀌었다. 유럽파들의 상황이 최악이었지만 맞불로 대응했다. 박주영(AS모나코)은 이적 문제로 외톨이였다. 홀로 훈련을 했다. 소속팀의 활약 여부는 대표팀의 잣대다. 하지만 외면했다. 2006년 9월 핌 베어벡 감독은 안정환이 소속팀을 찾지 못하자 대표팀에서 제외했다. "소속팀이 없는 한 당분간 대표팀에서 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없기 때문이다. 박주영이 주장이지만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는 지난달 조기 귀국해 1일부터 파주NFC(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몸을 만들었다. 시간이 부족했다.
구자철(볼프스부르크)은 주전 경쟁에서 또 밀렸다. 컨디션이 나쁘다는 의미다. 기성용과 차두리(이상 셀틱)는 하루 전 일본에 합류하는 일정이었다. 한-일전에서 이들의 평가는 결과가 말해준다. 박주영은 후반 교체됐고, 구자철의 이청용의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 기성용도 거친 플레이만 눈에 띄었다. 중원 싸움에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청용(볼턴) 지동원(선덜랜드) 손흥민(함부르크) 등도 차출 명단에 포함됐으나 불의의 부상과 소속팀 적응 문제, 고열로 제외됐다.
14명의 유럽파가 포진한 일본은 달랐다. 주전 선수의 경우 대부분이 소속팀에서의 입지가 굳건하다. 이번 경기는 친선경기다. 한국의 유럽파 사정은 일본보다 더 열악했다. 선수 차출은 객관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야 한다. 독단적인 믿음이 화를 자초했다.
▶경험과 비경험의 기준은
이정수(카타르 알 사드)의 파트너로 이재성(울산)을 투입한 것도 문제다. 조 감독은 프로 사령탑 시절부터 선수 선발에는 혜안이 있었다. 그러나 프로와 대표팀은 다르다. 훈련 시간이 비교가 안된다. 대표팀은 즉시 전력감을 선발해야 한다.
이재성은 소속팀에서 강민수와의 경쟁에서도 밀렸다. K-리그 출전은 지난달 16일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소집 전부터 조 감독의 시선은 이재성에게 꽂혀 있었다. 7일 몇 시간 먼저 소집해 별도로 조련시켰다. 비정상적이었다. 한-일전에 선발 투입시켰다. 그의 A매치 데뷔전이었다. 벤치에는 울산의 주장인 30세 곽태휘가 있었다. 그는 K-리그 올스타들이 뽑은 최고의 수비수였다. '좌근호-우자철' 카드를 꺼내든 것은 풍부한 경험 때문이라고 했다. 이재성의 투입은 어떤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
수비라인은 초라했다. 중앙 수비는 모래성이었다. 이정수와 이재성, 둘 다 흔들렸다. 철저하게 농락당했다. 3골차 패배가 오히려 다행이었다. 두 골을 터트린 가가와 신지(독일 도르트문트)는 "패스할 때마다 공간이 생겼다. 볼을 잡고 움직일 때 상대 수비수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비가 느슨했다"고 했다. 조 감독이 곱씹어야 할 부분이다.
▶틀을 깨고, 고정관념 버려라
리더도 키워야 한다. 조 감독은 모든 부분을 챙겨야 하는 꼼꼼한 스타일이다. 선수들에게 자율권이 필요하다. 그래야 리더가 성장할 수 있다. 박지성(맨유)이 올초 태극마크를 반납한 이후 대표팀에는 여전히 구심점이 없다.
그라운드에는 돌발 상황이 늘 존재한다. 위기관리 능력은 유연한 사고에서 나온다. 최근 대표팀을 보면 주전과 비주전이 확실히 나뉜다. 컨디션은 중요치 않다. 명성이 더 우선시 된다.
주관과 감각만으로 끌고가기에는 가야할 길이 너무 멀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에서도 위기는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틀을 깨야한다.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경쟁 구도도 더 활발해질 수 있다. 조 감독은 한-일전의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