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가지 않는 길이기에, 더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2008년 5월17일, 제63회 청룡기고교야구선수권대회 부천고와 효천고의 1회전 경기.
2-2로 맞선 8회말 효천고가 무사 1,2루의 찬스를 맞았다. 부천고의 절체절명의 위기, 이 상황서 부천고 정삼흠 감독은 4번 타자를 세번째 투수로 올렸다. 이 선수는 후속 타자를 삼진과 범타로 간단히 처리하며 팀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리고 9회초에선 결승 2루타까지 쳤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를 했다.
97㎏에 이르는 이 거구 선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투수와 타자 모두 매력적이지만, 투수가 더 편하다"고 당차게 말했다. LG 에이스 출신인 정삼흠 감독이 "근육량이 많아 투수로 뛰면 잔부상이 꽤 있을 것이다. 장차 김동주 이대호에 버금가는 거포로서의 자질이 더 풍부하다"고 말했던 것에 일종의 '반기'를 든 셈이다.
이 선수는 이 해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넥센 히어로즈에 1순위로 지명됐다. 팀에서는 삼성으로 떠났던 심정수를 대신할만한 오른손 거포로 기대를 받았다. 2009년 4월26일 SK전에서 프로 데뷔 이후 5경기만에 송은범을 상대로 홈런포를 쏘아올렸고, 5월1일에는 LG 봉중근을 상대로 또 다시 홈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이렇다 할 활약을 못 보여주고 대타로만 주로 나섰다. 1루에는 이숭용 오재일 등이 버티고 있고, 3루에는 황재균 김민우 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1루도, 3루도 꿰차지 못한 채 1,2군을 밥먹듯이 오르내렸다.
이러다간 소리소문없이 스러지는 선수가 될 것 같았다. 그러기엔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나이가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결심을 내렸다. 이럴 바에는 야구를 시작하고 늘 바라왔던 프로에서 투수로 뛰고 싶다는 꿈에 한번 도전해보겠다고.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투수 출신인 넥센 김시진 감독과 정민태 투수코치에게 어렵사리, 하지만 당차게 말을 꺼냈다. "투수로 전향하고 싶습니다."
이쯤되면 이 스토리의 주인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넥센 장영석(21) 얘기다. 장영석은 지난달부터 투수로 전향, 방망이 대신 공을 힘차게 뿌리고 있다.
사실 김 감독은 장영석의 투수 전환에 부정적이었다. 이승엽 추신수 이대호 채태인 김응국 등을 비롯, 해외에선 왕정치(오사다하루)까지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해 성공한 사례는 수도없이 많지만 반대의 경우는 무척 드물기 때문. 같은팀 소속인 황두성, 권준헌(전 한화) 정도가 그마나 성공한 사례이지만, 앞선 경우와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같은팀의 심재학 타격코치도 타자로 뛰다 투수로 전향했지만 어깨와 허리 부상에 시달리며 결국 3승3패만을 남긴 채 마운드를 떠나야 했다.
김 감독은 "투수와 타자의 메커니즘은 상당히 다르다. 특히 투수의 경우 어깨에 미세한 잔근육이 발달한데다, 근력이 뛰어나기에 투구 이후 팔과 어깨 근육이 곧 정상으로 돌아온다"며 장영석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한달여간의 연습을 지켜본 김 감독은 "근력이 괜찮다. 전력 피칭을 한 후 근육 회복 속도가 일반 투수들과 비슷하다"며 일단 하드웨어에선 합격점을 줬다. 그러면서 "타자를 세워놓고 던지는 라이브 피칭도 소화했다. 2군 경기서 뛰게 하면서 마운드 운영 능력을 살핀 후 빠르면 9월쯤 1군에서도 던져보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민태 코치 역시 "어지간한 투수들보다 공이 낫다. 직구도 145㎞정도 나오고, 체인지업과 슬라이더의 각도도 괜찮다"며 "여러가지 면에서 선발쪽이 더 적합해보인다. 잘 다듬어서 좋은 투수로 한번 키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 최고 '투수 조련사'들의 말을 전해들은 장영석의 앳된 얼굴에선 웃음꽃이 피었다. "정말 그러셨어요?"라면서도 믿기지 않는 표정. 하지만 자신감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장영석은 "2년전까지 서봤던 마운드이기에 두려움은 없다. 무엇보다 야구 선수로서의 꿈에 도전해볼 기회를 주셔서 너무 기쁘다"라며 "성공 사례가 거의 없기에 더욱 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내년엔 꼭 1군 라인업에 야수가 아니라 투수로 등록되는 것이 첫번째 목표"라고 말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감히 밟아보려는 젊은 투수 장영석의 대장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