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무너졌다. 16개의 공 중 스트라이크는 5개에 불과했다.
LG 신인 임찬규가 '6.17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임찬규는 19일 목동 넥센전에서 1-1 동점이던 9회말 팀의 네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전반기 막판 총력전을 선언한 LG로서는 9회말을 넘고 연장에서 반격을 꾀해야할 상황이었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선두타자 오 윤을 4구 만에 삼진으로 돌려세운 것. 오 윤은 스트라이크존으로 뚝 떨어지는 낙차 큰 커브를 그대로 지켜본 뒤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다음 타자 강정호를 상대할 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1구와 2구 커브가 각각 위와 아래로 멀리 벗어났다. 커브가 잘 들어가지 않자 직구를 연달아 두 개 던졌으나 이마저도 스트라이크존 아래와 위로 빠졌다. 유선정을 상대할 때는 더욱 아쉬움이 남았다. 유선정이 번트 모션을 취했음에도 연달아 볼을 던졌다. 주자와 번트에 신경을 쓰다보니 급격히 흔들렸다. 견제구가 늘어났고, 직구는 계속 스트라이크존 밑으로 벗어났다. 볼카운트를 2-3까지 끌고 갔지만, 바깥쪽 직구가 멀리 벗어나면서 또다시 볼넷. 다음 타자 강병식에게도 볼만 두 개를 던지자, 코칭스태프는 마운드를 심수창으로 교체했다.
지난 6월17일 잠실 SK전과는 다른 대응이었다. 당시 박종훈 감독은 "마운드에서 스스로 이겨낼 것이라 믿었다"며 임찬규를 고집했다. 하지만 마지막 아웃카운트 한 개를 잡지 못하고 4연속 볼넷을 내주고서야 강판됐다. '무엇이 옳다'에 대한 답은 없다. 팀에게 더 큰 참사, 개인에게 더 큰 상처가 되기 전에 빨리 교체해주는 것이 좋을 수도 있고, 아니면 개인의 발전을 위해 스스로 이겨내도록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 있다. 어느 것을 선택하든 20살의 신인 투수에게는 이겨내기 힘든 가혹한 상황이다. 이날 임찬규는 자신의 투구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선배들의 격려에도 말없이 덕아웃 뒤로 사라졌다. 아무리 신인답지 않은 패기를 가졌다 해도, 고졸 신인이 데뷔년도에 한 팀의 마무리투수를 맡아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역대 사례를 봤을 때 얼마 되지 않는 성공사례들도 모두 경험 있는 대졸 신인이었다.
임찬규는 지난해까지 전국대회 기간에만 집중적으로 공을 던졌다. 팀의 에이스로 많은 경기에 나오기는 했지만, 짧은 기간만 집중하면 됐다. 하지만 프로는 다르다. 시즌에 팀 당 133경기를 소화한다. 마무리투수의 경우 거의 매일 대기한다 생각하면, 운동량과 공 갯수부터 엄청난 차이가 난다.
또한 고교 시절 임찬규의 투구를 보면 80%에 가까운 공이 직구였다. 우월한 구위로 고교생들을 눌러왔던 것. 하지만 프로는 다르다. 이날 16개의 공 중 직구는 11개, 커브가 5개였다. 커브가 말을 듣지 않자 직구만을 던졌다. 임찬규 정도의 구위라면 직구 외에 다른 무기를 개발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넥센 타자들이 임찬규의 공 16개에 방망이가 한 번도 안 나갔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선구안 또한 수준이 다르다.
LG 박종훈 감독은 최근 임찬규의 좋아진 모습에 대해 "마운드에서 편안해졌다. 한층 성숙해졌다"고 칭찬한 바 있다. 하지만 19일 경기서는 난조를 보이자 투구 도중 그를 강판시켰다. 박 감독이 앞으로 임찬규를 어떤 식으로 기용할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