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볼넷에 울었다. 임찬규가 '6.17 악몽'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모습이다.
LG 신인 투수 임찬규는 16일 부산 롯데전에서 4-4로 팽팽히 맞선 8회말 팀의 6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1사 2루 상황에서 문규현을 2루 땅볼로, 전준우를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내며 8회말은 잘 넘겼다. 하지만 9회, 볼넷이 문제였다.
임찬규는 선두타자 김주찬을 볼넷으로 출루시키며 위기를 자초했다. 다음 타자 손아섭은 2루 땅볼로 막았으나, 1사 2루 상황에서 박종윤을 고의4구로 걸렀다. 박종윤이 좌타자였고, 다음 타자 강민호에게 병살플레이를 유도하기 위함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악수가 됐다.
임찬규는 주자가 모이자 밸런스가 급격히 흔들렸다. 강민호를 상대로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던졌지만 이후 연달아 볼 4개를 던졌다. 승부를 해야될 상황이었지만 공은 모두 스트라이크존에서 멀리 벗어났다. 결국 만루를 허용한 뒤 이인구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고개를 떨궜다.
이날 임찬규의 공은 스트라이크와 볼의 차이가 확연했다. 이전 경기에서 재미를 봤던 커브와 체인지업 역시 제구가 말을 듣지 않았다. 9회 던진 20개의 공 중에 스트라이크는 고작 6개. 이쯤되면 다시 한 번 4연속 볼넷을 내줬던 '6.17 사태'가 떠오를 만도 하다.
임찬규는 지난달 17일 잠실 SK전에서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연달아 4개의 볼넷을 내주며 자멸한 바 있다. 이후 LG 박종훈 감독은 임찬규를 박빙의 상황에서 등판시키지 않고 철저히 관리했다. 심리 치료도 받게 했고, 점수차가 크거나 승부가 결정된 상황에서 등판시키면서 밸런스와 자신감을 회복하도록 했다.
한달여의 시간이 지난 뒤, 임찬규는 9일 잠실 KIA전에서 처음으로 세이브 상황에 나섰다. 1이닝을 깔끔하게 막아내며 29일 만에 세이브를 추가했다. 다음 경기였던 12일 잠실 SK전에서도 1이닝을 삼진 2개 포함 퍼펙트로 막았다. 상대가 '6.17 사태'의 주인공인 SK였기에 더욱 의미있는 세이브였다. 하지만 16일 경기서 패전투수가 되면서 또다시 자신감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사실 고졸 신인 선수에게 마무리 투수라는 보직은 쉽지 않은 자리다. 팀의 승패가 달려있기 때문에 상당한 담력이 요구된다. 역대 신인 마무리 성공 사례를 살펴봐도 고졸 선수의 이름은 없다. 2002년 37세이브포인트(당시에는 구원승을 포함한 세이브포인트로 구원상 수상)로 구원왕과 신인왕을 휩쓴 조용준(당시 현대)도 연세대를 졸업한 대졸 신인이었다. 2006년 10승1패 11홀드 16세이브를 거뒀던 삼성 오승환 역시 단국대를 졸업하고 프로 무대를 밟았다.
고교 시절, 짧은 대회 기간에만 집중하면 됐던 선수에게 133경기의 대장정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게다가 팀의 승리를 지켜야 하는 마무리투수라면 더욱 부담감이 크다. 매일 불펜에서 몸을 푸는 것 역시 생소하고, 쟁쟁한 선배들 앞에서 자신있게 공을 뿌리는 것도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임찬규가 신인답지 않은 담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최근 분명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믿음직한 마무리 투수가 없는 팀 사정도 있지만, 미래가 창창한 20살의 신인 선수를 위해서는 부담을 조금 덜어줄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