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조작일까? 집단 항명일까?
시민구단 대전이 K-리그를 두 번 죽이고 있다.
승부조작이 첫 신호탄이었다. 대전 출신이거나 현 소속팀이 대전인 선수 13명이 승부조작에 연루돼 기소됐다. 전체 53명의 25%에 이르는 수치다. 김윤식 사장에 이어 왕선재 감독이 사라졌다. 왕 감독은 새로운 사장이 선임된 직후인 2일 전남전(4대4 무)을 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신진원 코치가 대행을 맡았다. 이후 해외토픽감인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대전은 9일 포항(0대7 패), 16일 경남전(1대7 패)에서 무려 14골을 내줬다. 마치 각본에 따르기라도 한 듯 2경기 연속 7실점을 기록했다. 1983년 K-리그가 태동한 이후 처음 있는 사건이다. 앞으로 연출되기도 힘들다. K-리그는 승부조작으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대전이 물을 더 흐리고 있다.
믿기지 않는 스코어에 축구가 본업인 K-리그 관계자들조차 아연실색하고 있다. "선수들이 왕 감독의 사퇴에 반발해 집단 항명하고 있는 것 같다", "새로운 사장의 기행에 반기를 들었다" 등 소문이 무성하다. 대전은 부인하지만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것은 사실이다.
과연 대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구단주 염홍철 대전시장이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그는 지난해 6월 시장에 재당선된 후 "축구특별시 부활"을 외쳤다. 그러나 축구에 '정치 재갈'을 물렸다. 김광식 사장이 두 달 후 임기(3년)를 채우지 못하고 11개월 만에 자진 사퇴했다. 염 시장은 자금줄을 끊었다. 김 사장은 "가장 비정치적으로 접근해야 할 대전 시티즌의 대표라는 직함이 정치적인 외풍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다. 저를 마지막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염원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염 시장은 자신의 선거대책본부장 출신인 김윤식 사장을 선임했다. 최근 승부조작이 일어나자 선장을 교체했다. 인사가 만사지만 또 다시 악수를 뒀다. 1일 측근인 김광희 전 대전시 정무부시장을 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콘도 매입 문제와 인사청탁 등 각종 비리의 구설수에 오른 인물이다. 구단 이미지 쇄신 방향과 어긋난 인사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신임 김 사장은 안하무인이었다. 전임 사장은 왕 감독에게 "사퇴는 최고경영자 한 명으로 족하다. 계속해서 팀을 맡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김 사장은 전남전을 4시간 앞두고 왕 감독과 만나 일방적으로 경질을 통보했다. 왕 감독은 모양새가 아쉽다고 했지만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였다.
김 사장의 기행은 이 뿐이 아니다. 선수 면담 과정에서 "내가 오고 싶어서 이 자리에 왔는 줄 아느냐"면서 사기를 저하시켰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선장이 이런 투로 말을 하는 마당에 동력은 없었다.
선수단도 내부적으로 폭발했다. 고참인 K선수가 포항전 직후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후배들을 소집, '얼차려'를 했다. '원산폭격(뒷짐을 진 채 머리를 땅에 박는 가혹행위)'과 폭언을 했다. 프로에서는 웬만해선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을 소집, 반발을 샀다. 분위기는 엉망이 됐다. 자연스럽게 경기력은 저하됐다.
대전 선수들은 프로의식을 잃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정관에는 축구는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된다고 명시돼 있지만 이 또한 공염불이다. 염 시장이 사고를 전환하지 않는 한 대전은 K-리그의 커다란 골칫덩이일 수밖에 없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