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회 브리티시오픈은 심하게 말하면 '영감님들의 대회'다. 17일(한국시각) 잉글랜드 샌드위치의 로열 세인트 조지스골프장(파70·7211야드)에서 계속된 대회 사흘째 경기에서 대런 클라크(43·북아일랜드)는 합계 5언더파 단독선두를 달렸다. 클라크는 유럽투어 통산 13승을 거뒀는데 최근 들어서는 뚜렷한 하락세였다. 역대로 메이저대회 톱10을 여섯 차례 기록했는데 2001년 브리티시오픈 3위를 마지막으로 지난 10년간 빅 무대에서 존재감을 잃었다.
토마스 비요른(40·덴마크)은 합계 2언더파 공동 3위다. 대회 출전권이 없었던 비요른은 비제이 싱(피지)이 부상으로 결장해 대타로 출전 기회를 잡았다. 비요른 역시 5년전이 전성기였다. 이밖에 미겔 앙헬 히메네스(47·스페인)가 1언더파 공동 5위, 데이비드 러브 3세(47·미국)가 이븐파 공동 7위다. 노병들은 '아직 죽지 않았다'를 외치고 있다. 62세인 톰 왓슨(미국)은 공동 25위로 관록의 절정을 자랑하고 있다. 4라운드가 남았지만 예상치 못한 반전이다.
클라크는 3라운드에서 날씨 덕을 봤다고 인정했다. 오전에는 바람이 매서웠고, 오후에는 그보다는 좀 나았다. 클라크는 "행운이다. 결과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날씨 복불복'이 이들의 화려한 귀환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코스 특성이다. 대회장인 로열 세인트 조지스골프장은 전형적인 링크스 코스(해안 초원지대)다. 바람이 강하고 페어웨이는 울퉁불퉁하고, 러프는 어지럽다. 여기에 항아리 벙커가 입을 벌리고 있다.
비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이번 코스는 파70에 7211야드로 세팅돼 짧지 않은 편이지만 환갑을 넘긴 톰 왓슨도 드라이버샷 평균 비거리가 290야드다. 왓슨이 한창 때는 장타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최근 시니어 투어에선 270야드 안팎의 비거리를 기록 중이다. 페어웨이가 딱딱하기 때문에 런(볼이 떨어져 구르는 것)이 상당히 많다. 러프로만 들어가지 않으면 거리는 큰 고민이 아니다.
오히려 그린 주변에서의 쇼트 게임과 퍼팅이 승부를 좌우하고 있다. 젊은 선수들이 장기인 파워를 발휘할 기회가 많지 않다. 쇼트 게임은 풍부한 경험이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린과 페어웨이의 경계가 어중간해 심하면 50m 퍼팅을 해야할 때도 있다. 노장들은 이런 변화에 잘 적응한다. 변화무쌍한 바람에 대한 대처와 탄도 조절도 베테랑이 훨씬 능숙하다. 오랜 투어생활을 통한 노하우가 묻어 나온다.
브리티시오픈은 전체적으로 트러블샷과 굴리는 샷이 많아 갤러리의 관전 재미는 떨어진다. 타수를 줄이는 것보다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선수들도 공격적인 플레이보다는 방어적인 플레이로 일관하고 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