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뜨거웠다.
수도권 끝 장맛비로 잠실, 목동 경기가 취소됐지만 대구는 맑은 날씨 속에 본격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삼성 코치들은 "따끈 따끈하다"며 짐짓 너스레를 떨었지만 물처럼 줄줄 흐르는 땀을 감출 수는 없었다. 타 팀에 비해 더위에 강한 KIA 선수들이지만 푹푹 찌는 날씨와 인조잔디에서 아지랑이 처럼 올라오는 뜨거운 지열에 혀를 내둘렀다.
미리보는 한국시리즈. 승부에 대한 양팀 벤치의 필승 의지도 대구 날씨만큼 뜨거웠다. KIA 조범현 감독과 삼성 류중일 감독은 삼성 코치 시절부터 인연이 각별한 절친한 사이다. 지난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는 대표팀 감독과 코치로 찰떡 궁합을 자랑하며 대망의 우승을 이끈 바 있다.
하지만 사적 친분을 따지기에는 이날 경기의 중요성이 너무나 컸다. 단순한 1승을 넘는 측면이 분명 있었다. 에이스 윤석민-차우찬의 물러설 수 없는 정면 충돌이었기 때문이다. 주말 3연전의 기선제압은 물론 포스트시즌에서도 가능한 1선발 매치업이다. 종종 시즌 중의 기억은 단기전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을'을 생각했을 때 쉽게 밀려서는 안될 중요한 한판 승부. 빅매치답게 평일과 무더위 속에도 대구구장은 올시즌 11번째 만원관중이 들어찼다.
절친한 양 팀 사령탑은 평소보다 다소 예민한듯한 모습이었다.
조범현 감독은 무더위 속에서도 경기전 경북고에서 김주형 신종길에 특타 지도를 직접 한뒤 평소보다 늦게 구장에 도착했다. 차우찬-카도쿠라-배영수로 이어지는 삼성의 에이스급 선발 로테이션이 적지 않게 신경쓰이는 표정이었다. 특히 잇단 우천 취소 속에 지난 2일 대구 롯데전 이후 처음 선발 등판하는 차우찬에 대해 "13일만에 나오는 건 반칙 아니야"라는 농담 속에 껄끄러움을 담았다.
삼성 류중일 감독도 평소보다는 이례적이었다. 0-1로 뒤진 3회말 공격에 앞서 마운드 위에 직접 올라가 어필을 했다. '윤석민의 축족인 오른발이 투구판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한 김평호 1루 코치 어필의 연장선상. 하지만 상대 투수가 서있는 마운드 위까지 직접 올라가 설명을 하는 모습은 평소 온화한 류 감독의 스타일로 볼 때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상대 투수 윤석민과 어색하게 마운드 위에서 조우한 류 감독은 돌아서는 순간 미안한듯한 미소를 던졌고 윤석민은 모자를 잡고 꾸벅 인사로 화답해 눈길을 끌었다. 선수들도 7회 이용규 타석 때 타임을 거는 타이밍을 놓고 이의를 제기하는 등 신경전을 펼쳤다.
승부에 대한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던 양 팀 선수단. 하지만 수준 높은 경기 속에 상대에 대한 마지막 배려만큼은 잃지 않았던 멋진 경기였다.
대구=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