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부담감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넥센 유격수 강정호는 '광정호'로 불린다. 지난해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유격수로 출전, 뛰어난 타격과 수비로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을 금메달로 이끈 한 명의 주역이기 때문. 아무래도 넥센이 인기구단은 아니기 때문에 실력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졌는데, 강정호의 존재감을 뚜렷이 각인시키며 한국을 대표하는 유격수로 불리기에 충분한 기회였다.
수비 하나만큼은 일가견이 있는 강정호는 2009년과 2010년에 한 시즌 133경기를 모두 소화해내며 2009년에는 23홈런을 친데 이어, 2010년에는 3할 타자 대열에도 합류하는 등 타격에서도 눈을 떴다. 내야 수비의 핵이면서도 장타력까지 겸비한 대형 유격수가 탄생한 것. 신인 시절부터 조심스럽게나마 자신의 롤모델은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라고 말하며, 차근차근 이 길을 밟아나가고 있다.
팀내에서의 위상이나 기대치가 상승한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동기이자 유격수 경쟁자였던 황재균이 지난해 롯데로 이적하고, 간판 타자였던 이택근이 LG로 옮겨간데 이어 병역 문제까지 해결됐으니 강정호는 명실공히 팀의 현재와 미래를 짊어진 간판스타로 떠올랐다.
김시진 감독이 강정호를 올 시즌 전지훈련부터 전격적으로 4번 타자에 기용한 것도 바로 이런 기대감 때문. 하지만 이에 대한 부담감이었을까, 강정호는 지난해 보여줬던 '크레이지 모드'를 발휘하지 못했다. 4번 타자의 '필수항목'이라 할 수 있는 홈런도 28경기만에 처음으로 때려냈고, 이후 한달 가까이 홈런을 추가하지 못했다. 멀티 히트를 치는 날도 많았지만, 홈런은 커녕 안타 하나도 신고하지 못하는 경기도 늘어만 갔다. 공격이 안되다보니 수비에서도 전에 보이지 않은 실수가 늘어갔다. 급기야 5월말에는 2군까지 내려갔다 오기도 했다.
"부담감 때문이죠. 팀에서의 기대는 큰데, 찬스를 놓치거나 홈런 등 장타가 좀처럼 안 나오니 더 조급해지고…." 강정호의 말처럼 심리적인 요인이 컸다. 병역을 면제받으면서 솔직히 긴장감이 떨어진 것도 한 몫 했다. 게다가 아무래도 중심 타자이다보니 상대팀 투수들로부터 집중 견제를 받았다. 스윙은 커지는데, 상대팀은 더 집중해서 집요하게 달려드니 엇박자가 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2군을 다녀온 이후 마음을 비웠단다. 홈런을 치기보다는 멀티 히트로 출루율을 높이고, 타석에서의 아쉬움은 싹 잊고 수비에서 더 집중을 하다보니 어느새 정상적인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장마로 인해 일정이 들쭉날쭉 함에도 강정호는 7월 들어 14일 현재까지 치른 7경기 가운데 무려 5경기서 2안타씩을 날렸다. 지난 9일 한화전에선 올 시즌 첫 멀티 홈런(2개)을 때리기도 했다. 7월 타율만 4할6푼1리. 지난 2년간 보여준 '크레이지 모드'라 할 수 있다.
더 힘이 나는 이유는 자신이 전형적인 슬로 스타터인데, 시즌 중반을 넘으면서 예년의 패턴대로 페이스가 올라오고 있는 것. 용병 타자 알드리지가 비로소 제 역할을 하며 중심 타자를 꿰차고, 자신은 부담감이 덜한 6번 타자로 돌아온 것도 부담감을 한층 덜어주고 있다.
강정호는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다보니 제 페이스를 찾고 있는 것 같다"며 "시즌 초반의 부진을 만회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강정호는 부상을 당한 KIA 유격수 김선빈 대신 오는 23일 열리는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웨스턴리그 선발 유격수로 출전할 예정이다.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