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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비 맞는 독수리는 무죄, 볼수록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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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K-리그에선 쏟아지는 비를 하염없이 맞고 있는 '독수리' 최용수 FC서울 감독대행(38)이 주목을 받는다. 지난 4월 황보관 감독이 자진사퇴하면서 최 감독대행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초반 3연승의 상승세와 그라운드로 달려들어가는 세리머니로 주목을 받았고, 이제는 비맞는 감독으로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최 감독이 비를 맞자 상대팀 감독들이 긴장한다. 처음엔 젊은 감독의 패기로 한두 번 하다 그치겠지 했지만 비가 아무리 많이 쏟아져도 개의치 않는다. 3일 전북과의 원정경기에선 쏟아진 장대비를 고스란히 다 맞았다. 비 맞은 독수리의 모양새는 별로 였다. 하지만 서울 선수들의 무서운 뒷심은 빛났다. 두 골을 먼저 먹고 두 골을 빼앗에 적지에서 선두 전북과 2대2로 비겼다. 최 감독은 경기 후 젖은 양복 대신 선수들과 똑같은 빨간색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나타났다.

최 감독이 K-리그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온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아직 최 감독의 축구 색깔은 없다. 몇 경기 지휘하지를 않았기 때문에 색깔을 논할 단계도 아니다. 총 15경기(정규리그, 컵, 아시아챔피언스리그 모두 포함)에서 8승4무3패다.

최 감독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180도 다른 말과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옆으로 찢어진 매서운 눈을 가진 독수리와 닮았다. 그런데 요즘 시인 같은 말을 토해 낸다. 3연승을 달릴 때는 최용수 어록이 인터넷을 달궜다. 전북전을 앞두고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 코로 숨쉬어라" "비가 나를 유혹한다"고 말했다. 내 코로 숨쉬어라는 선수들에게 우리가 준비한 플레이를 하자는 취재에서 한 말이라고 했다. 비가 나를 유혹한다는 것은 왜 자꾸 비를 맞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최 감독은 부산 출신이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이지만 생각이 깊고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말이 그렇듯하다. 선수들에게도 많은 말 보다 이런 식으로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몇 마디 말을 한다고 했다. 젊은 지도자 답게 자신을 포장할 줄도 안다. 일부에선 어린 지도자가 너무 말장난을 치는 것 아니냐고 삐딱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또 최근에는 3연승 후 주춤하자 감독 교체 약발이 다 됐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 감독이 비를 맞는 이유는 간단하다. 선수들이 비를 맞고 있기 때문에 자신도 비를 맞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비맞은 양복은 드라이를 해서 다시 입는다.

최 감독에게는 아직 대행 꼬리표가 달려 있다. 언제 그만 둘 지 모른다. 그는 요즘 많은 걸 보고 배운다고 했다. 감독과 코치의 큰 차이를 매 경기 느끼고 있는 것이다. 리더가 뭔지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종목은 다르지만 야구 명장 김인식 감독은 "야구 감독이 300승 300패를 해봐야 보는 눈이 생긴다"고 말했다. 축구에선 50승 50패 정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최 감독이 갈 길은 아직 멀다. 지금까지는 매우 순탄해 보인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